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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Nov 16. 2015

스무 몇의 연애

잔잔하기보단 강렬하다는


손목 끝 보풀이 일지 않은 단정한 검은색 스웨터를 셔츠 위에 입고, 그 위로 드러난 넓은 그의 어깨가 내 시선을 끌었다. 자기 일에 담담히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그는 모든 말과 행동마저 성실해 보였고 그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아버지와 딸이 미래에서 상봉하는 장면에 눈물을 흘렸다는 그를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토록 그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여성스럽지 못한 말괄량이인 나는 성실하다기보단 선택적인 일에 의욕적인 편이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감동받는 것보다 분석하고 이해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일상은 계획적으로, 허나 일탈은 즉흥적으로 사는 이중적인 삶을 동경하며, 감성적보단 감정적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렇게 내가 갖추지 않은 것을 지닌 그가 어른스러워 보였고, 이는 곧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렇게나 서로 다른 우리의 시작은 내게 있어 꽤 흥미로웠다.


자꾸 생각났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깊게 매료된 적은 꽤 오랜만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많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일하다가도 빈 엑셀 칸을 보면 그가 생각났다. 밥 먹다가 무심코 집어 든 컵에 물이 찰랑이면 그가 생각났다. 엉킨 이어폰 줄을 풀다가도 그가 생각났다. 회의 중에 수첩에 적힌 오늘 날짜를 보니 또 그가 생각났다. 일하는 데까지 이러다니 적잖이 곤란스러웠다. 멍하다가도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그가 당황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내가 그랬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소설에 나오는 사랑에 빠진 이들의 독백, 훈훈하다. 그 픽션 속의 사랑은 아무 관계없는 나까지 흐뭇하게 만들어 주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남들의 몫이겠거니, 나의 연애세포는 많이 죽었을 거란 의심이 들 찰나 홀연히 그가 나타났다. 친구와 카페를 가거나 빨래를 널던 나의 주말은 이제 그와 함께 무엇을 하며 보낼지 고민하게 되었다. 온전한 휴양만을 바라던 나의 휴가는 그와 함께 떠돌고 싶게 되었다. 그의 어릴 때 사진을 보면 그때의 그가 궁금해졌다. 그를 만나기로 한 날은 점심시간이 지나고부터 조급해졌다. 컴퓨터 바탕화면 아래 숫자가 3에서 4로, 4에서 5로, 5에서 6으로 갈수록 점점 더. 그를 만나 반가움에 당장에 그를 안고 입을 맞추는 상상을 하면 아랫배가 알싸해지곤 했다. 함께 할 때면 내일 아침에 있을 회의도 새벽 운동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더 함께 하고 싶었고, 데이트를 하고 손을 잡고 싶었다. 내 생각도 시간도 모두 그를 향했다.


새벽녘 우리 두 사람을 누르고 있는 그 무겁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잊을 수 없다. 그 푸릇한 공기를 가르고 그의 한 팔은 나를 안고 나의 한 팔은 그를 감싸기 위해 뻗었다. 그의 어깨를 배게 삼아 기댄 나는 연신 그의 숨소리에 맞춰서 따라 숨 쉬려 했다. 그와 나 사이 벌어진 틈, 그 틈 사이로 몽글몽글한 따뜻함의 무언가가 녹아나면 나는 그에게 그리고 그는 내게 스며들었고, 그제야 우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참이나 그를 애달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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