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어려운 그래서 매료되는
그렇게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들이 늘어 갔고, 나는 그보다 조금 빨리 나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 했다. 분명 나는 그에게 반했지만, 차 안대를 두른 경주마처럼 연애에만 빠지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와의 만남만큼이나 다른 만남도 중요했고, 그와 종일 보낸 시간만큼이나 홀로 내게 잠기는 시간도 필요했다. 또한 나는 타인에게 기대는 편이 못 되었고, 이는 동시에 그가 기댈 수 있는 곳을 열어주지 못했다 것을 의미했다. 그와 나의 방식도 달랐다. 가령 그는 보고 싶어 지면 오매불망할 정도라 당장에 만나야 하는 것이고, 나는 보고 싶어도 이 때문에 예정된 계획이 흐트러진다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별종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거라는 이기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를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놓아주었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나는 그에게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비추어졌다. 집착만이 애정의 깊이를 재는 징표가 아닌데 말이다. 다른 이들처럼 이내 결국 그도 나를 바꾸고 싶어 했다, 희생이란 카드를 꺼내면서. 문제는 내가 한 희생은 내게 있어 100이었는데, 그에게 있어서는 50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당신이 베푼 만큼 똑같이 돌려받지 못해 항상 목말랐고, 나의 사랑의 깊이는 얕은 것으로 치부당해버렸다. 즉 그가 원하는 사랑은 세모 모양인데 나란 사람은 네모를 내어주었고, 좋아하는 그에게 원하는 모양을 내어 줄 수 없음에 나는 점점 목이 죄어 왔다. 동시에 그것을 계속 갈구하는 그를 지켜보는 일은 더 마음이 무거워지게 했다.
이러한 우리의 다른 사랑의 패턴과 깊이는 좋아기만 하면 해결될 줄 알았다. 드라마나 책에서 사랑은 전지전능했다. 싸운 연인도 나쁜 악당도 세계 평화도 모두 사랑이면 해결되었기에, 나도 이를 숭배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막연했기에 허무맹랑했음을. 사람들은 각자 특유한 패턴을 가진 퍼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삼십 년 넘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에 따라 만들어지고 단단해진 이 패턴을 다 커버린 우리는 쉬이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기엔 그는 너무도 어린 왕자의 망토를 두른 로맨티시스트였다.
나는 색연필을 꺼내어 두 퍼즐 사이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그는 퍼즐의 튀어나온 부분을 사포로 깎아서 딱 맞게 붙이고 싶어 했다. 나는 공존을, 그는 희생을 우린 그렇게 미묘하게 다르지만 같은 것을 꿈꿨다. 두 사람은 입을 맞추자 서로의 입 안에 감추고 있던 송곳니가 드러났고 이에 서로가 찔려댔고 피가 났고 곧내 지쳤다. 그렇게 우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 자기만의 온전한 패턴을 지닌 퍼즐을 테이블에 내놓고 오해하고 싸우고 해져갔다. 나는 그토록 그를 원했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을 내어줄 수 없음을 깨달을 때마다 여기서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빠른 길인지 알기에 유혹 아래 갈등을 멈추기 힘들었다.
(적어도 내겐) 연애는 쉽지 않다. 사람이란 본디 정사각형이 아닌데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나 빈틈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빈틈이 있으면 서로 마주 보게 되고 또 그러다 싸우기도 하고, 다른 것을 배우기도 하고, 또 쉴 공간을 놓아둘 수도 있으니 틈이 존재하는 편이 더 재밌지 않을까? 별 한 개짜리 방적식보단 고군분투하여 다섯 개짜리를 풀었을 때 사람들은 쾌재를 부르듯, 연애란 어렵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 본다. 현재로 돌아가 나는 퍼즐 사이에 그림을 그릴지 사포를 꺼내들지 모르겠지만, 사랑아래 이 또한 지나가리 방관하기보단 내 선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겠다. 본체 과거에 대한 미련이 많은 사람이라, 최선을 하고 다 해야 후에 후회의 여지가 남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력을 다하고도 멈추게 되면, 미련보다도 가슴 아픔이 시간이 지나 사랑하고 성장했던 추억으로 탈바꿈하는 마법을 마주할 수 있게될 것이기에. 어쨌거나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와 노력하겠다는 그가 있으니, 나와 그는 아직 멈출것 같진 않다.
그를 만나 싸울 것을 생각하니 기대된다.
빨리 그를 만나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퍼즐을 지니고 연애란 것을 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