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걸어도 걸어도'에서 또 만나요.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죽었다.
만우절에 떠난 스타. 사람들은 모두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차라리 믿지 않겠다며, 울며, 그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 장국영이라는 배우는 보고, 들어보았어도 나는 그의 죽음에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내 주변의 그의 영화를 사랑하던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고, 그의 죽음을 믿지 않으려 했고, 그를 잘 몰랐던 나는 그의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2018년 9월 15일. 키키 키린이 죽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본 영화배우가 죽었다. 믿고 싶지 않다. 나는 그녀의 영화를 적어도 50번은 넘게 봤을 것이다. 그녀가 따뜻하며 서늘한 연기를 선보인 '걸어도 걸어도'라는 영화 한 편을 두고도, 20번 이상은 보았으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그녀. 최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이 칸에 초청받아 그녀는 칸으로 향했다. 칸에서 찍힌 사진 속 키키 키린 할머니는 내가 알고 있던 그녀가 아니었다. 홀쭉한 볼에, 쾡한 눈. '어느 가족'이 개봉을 하고 영화 속에서 만난 그녀는 많이 약해진 것 같았다. 그녀는 암투병 중이었다.
'어느 가족' 이전에 그녀가 출연한 6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중 그녀가 죽음을 연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내레이션 상으로 그녀의 죽음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어느 가족'에서 그녀는 가족들과 죽음을 준비했고, 가족들 곁에서 세상을 떠나는 장면을 연기했다. 영화관에서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멀리 계신 우리 할머니 생각, 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그녀의 연기. 이 두 가지가 나를 울렸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연기였다니.
그녀의 연기는 삶이다. 일어를 모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녀의 대사는 우리말처럼 들린다. 어조, 높낮이, 표정, 장면마다 모든 것이 다르다. 그녀는 요리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한다. 그녀는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배우를 진심으로 아들로서 맞이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녀를 떠올리며 쓴 글이다.
' 아들 부부가 거실 쪽으로 걸어 들어갈 때, 준비해둔 슬리퍼를 신는 걸 잊어버렸다. 그러자 기린 씨는 순간적으로 이 슬리퍼를 들고, 허리를 구부린 채 세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이것은 물론 각본에 쓰인 대로는 아니다. 컷을 외치자 촬영감독인 야마자키 씨가 내 쪽을 돌아보며 "최고찮아....몸을 굽힌 저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모두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말한 장면. 자연스레 슬리퍼를 주워 따라가는 장면이다.)
영화가 긴장감을 잃고, 지루해지는 틈 속에서 그녀가 나타나면 영화는 생기를 찾는다. (그녀가 연기한 영화는 아주 많지만, 나는 그중 '걸어도 걸어도'의 키키 키린을 가장 사랑한다.) 그녀가 연기한 것은 정말 우리 엄마, 할머니였다. 착한 얼굴과 따뜻한 목소리를 하고 있지만, 가끔 가슴속에 맺힌 한을 서슬 퍼런 말들로 슬며시 풀어내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우리네 엄마.
그녀의 영화를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크나큰 슬픔이다.
이제 장국영의 죽음에 눈물 흘리고, 긴 시간 동안 그를 그리워했던 내 주변 어른들의 마음을 알겠다.
나도 그녀의 영화를 반복해서 찾아보며, 위로를 받겠지.
지난 주말, 몸이 으스러지게 아팠다. 주변의 고요한 정적이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것 같아 '걸어도 걸어도'를 틀어두고 보다 말다 하며 잠에 들었다. 키키 키린의 이야기가 웅얼 웅얼 내 귓속에 맴돌았고, 마음이 편안했다. 어릴 적 할머니 이야깃 소리를 듣다가 잠들던 때처럼.
배우의 연기에 감탄하고, 배우의 연기로 위로받았던 귀한 시간을 내게 선사해주었던 키키 키린 할머니에게 감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키키 키린 할머니!
https://www.youtube.com/watch?v=9yKlLvfZ1zQ
*그녀의 연기를 엿볼 수 있는 걸어도 걸어도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