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과장님! 잘 지내시나요?
회사에 발령을 받고, 한 선배로부터 '스위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스위치'는 '직장 일'을 의미한다. 출근해서 회사에 도착하는 순간 스위치를 켜서 열심히 일에 집중하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면 스위치를 꺼서, 직장과 일상의 균형을 잘 맞추라는 이야기였다.
대학시절부터 존경하던 교수님께서 항상 삶의 '균형'을 강조하신 덕에 그 이야기는 내 마음에 곧바로 새겨졌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스위치론'(?)을 실천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번번이 매년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삶에서 직장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만, 아직은 번번이 스위치를 켠 채로 퇴근하고 있다.
그런데 삶에서 직장의 일과 개인의 일상을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면 모를까, 직장에서 만난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분리는 더더욱 어려워 보인다. 업무는 회사에 남아, 야근을 하고 끝내면 되지만, 직장에서 겪는 사람과 관련된 문제는 야근을 해도 끝내기 힘들다.
이렇게 끄지 못한 스위치 앞에서 서성이는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났다. 바로, 미생의 오상식 과장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미생'이라는 섬에서 거의 3일을 머물렀다. 20부작의 드라마를 3일에 나눠 모두 보았다. 언젠가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아주 잘 표현한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미생을 다 보고 나면, 내가 주인공이 된 마냥, 지쳐 퇴근한 기분이 든다. ' 어쩌면, 누군가에게 미생은 전투 같은 우리 삶을 너무도 잘 담아, 보기 힘든 드라마일지도 모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TV 속에 나와 닮은 이가 한 명 더 있다는 공감과 위로 덕에 몰입하여 볼 수 있는 드라마일 것이다.
미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입체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인물이었던 '오상식' 과장은 나처럼 '스위치론'에 완벽하게 실패한 사람이었다. 후임 '장그래'를 끝까지 안고 가기 위해, 자신이 삶에서 중요시하는 신념을 직장에서도 지켜내기 위해, 그는 스위치를 끌 수 없었다. 집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생각하고, 고민한다. 어쩌면, '오상식' 과장의 가족들은 그런 '오상식'이 미웠을지도 모른다. (허나 드라마 장면에서 오상식 과장의 가족들은 모두 '상사맨' 오상식을 위로해주고, 응원한다. 부러운 상식 과장님!)
미생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일상은 직장이라는 삶의 터전에서도 계속된다. 완벽한 가면을 가방에 넣어 다니지 않는 이상, 우리는 직장에서도 '우리'다. 그리고 직장에서 나의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때론 고민하기도 하고, 투쟁하기도 한다.
지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스위치를 잘 켜고, 끄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 유쾌하게, 스위치를 켜고 끄기 위해서는 내가 직장에서 나 답게 내 모습을 지키며 생활할 때 가능하다. 부딪히고, 타협하기도 하며, 직장에서도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나다움'을 갖출 때, "똑딱!"하고, 스위치를 끌 수 있을 것이다.
오 과장님도 안 되는 일을, 내가 하려고 한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오늘 한 걸음 갔다. 나 답게 살며, 스위치를 끄기 위한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