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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이 Dec 25. 2016

2016.12.25 일상

크리스마스보다는 일요일

1. 라우더 댄 밤즈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3356


죽음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의 파동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고 난 뒤의 얼마 간은 일상을 되찾기 위해 버둥거림이 채운다.

일상을 되찾기 위한 버둥거림은 남은 자가 죽음에 대해 직면할 시간들을 잠시 유예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남은 자는 누군가 떠난 자리에 대해, 적응하며, 슬퍼하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때론 슬픔(떠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남은 자신에 대한 가여움)에 빠져, 밤을 보내기도.

때론 잘 살아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생기 있는 삶의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잠시 슬픔을 잊어내기도.


조나와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는 엄마의 빈자리에 적응하지 못하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도망가려는 막내아들을 걱정하며.

막내아들은 떠난 엄마의 자리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그 가족의 첫아들, 조나는 새로 태어난 아이와 아내와의 삶을 꾸리며.


조나의 가족들도 버둥거림의 시간으로 엄마(이사벨)를 기억하고,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종군 사진작가였던 이사벨과 친했던 한 기자가 이사벨의 3주기 사진 전시를 맞아 기사를 쓰려고 한다. 

그리고 이사벨 가족에게 이사벨의 '진짜' 죽음에 대해,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으려 한다. 


이사벨의 막내, '콘라드'는 엄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고 여기고 있다. 

당시 12살밖에 되지 않았던 '콘라드'에게 아버지와 형(조나)은 엄마의 '자살'을 숨기고 만다.

그리고 영화는 뉴욕 타임스에 실린 엄마의 진짜 죽음을 막내, 콘라드가 마주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진짜 죽음을 아는 두 사람, 가짜 죽음을 아는 한 사람. 

세 사람은 가족이지만, 같은 진실에 대해 나누지 못하면서, 서로를 피해 다니고 있었을 뿐이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 

엄마를 알았지만, 엄마의 어둡고, 외로운 순간들에 대해 안아주기 어려웠던 사람들.


'이사벨'은 폭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사명감을 가지며, 아프고, 연약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포화 속에서 그녀는 카메라로 사람을 담고, 죽음의 순간을 담으며,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포탄 조각에 맞아, 다쳐도. 그녀는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 그래야만 하기에.

그녀는 하루 종일 귀를 가득 채우는 포탄 소리 속에서

고요함이 가득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전장의 사진기자가 아니라 엄마로, 아내로 살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 아주 머물기로 결심하게 된다. 

전장에서 카메라 한 대와 몸뚱이 하나로 버텨내는 아내를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

죽어가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기다리고, 걱정하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정을 지키고, 가족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구에서 가장 슬프고, 눈물이 매일 넘쳐나는 곳에서 약한 사람들을 돕는 중요한 일도 했던 사람이다. 


두 자아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집에서만은 완전할 수 없었고, 공허했던 그녀.

포탄 소리보다 더 괴로웠던 가족들의 세심한 배려. (어쩌면 불편했을 배려)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3주기 전시회를 맞아, 가족들은 이제야 그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위대한 사진가였으며, 세상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였으며, 행복한 가정의 엄마로서 살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한 안타깝고, 대단한 여인에 대한 기억이 아닌, 

진짜 '이자벨'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위의 사실들은 가족들이 이사벨의 진정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마주하기 어려워, 피하기 위해 필요했던 사실들이었을지도 모른다. )


이사벨이 가졌던 혼란스러움, 고독함, 불안함, 그리고 이사벨의 또 다른 사랑까지.

가족들은 이사벨의 진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시작한다.


인정하기 시작하는 순간, 모든 가족들은 편안해진다. 


죽음 뒤에 숨어, 현실을 버텨나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떠난 자에 대해, 받아들임으로써 평온을 얻는다. 


누군가 떠난 뒤에 경황없이, 슬퍼하는 순간들 뒤에는 

떠난 자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남은 자는 떠난 자에 대해 기억을 편집하고, 다시 재구성함으로써 떠난 이를 기억한다.

(어쩌면 가장 차가운 진실은 삭제하고, 자신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기억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떠난 사람에 대해 위로하고, 다시 살아가려면

외면했던 떠난 사람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의 고통, 그의 외로움을.



2. 크리스마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저곳 교회와 성당에 모인 사람들 외에 많은 사람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궁리해야 하기도 한다. 

마땅한 약속이 없는 자는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한다. 

부처님 오신 날, 어린이날, 광복절과는 달리,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이브'가 있어, 누군가에게는 꽤나 긴, 공휴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별다른 일 없이 집에 있어도 참 좋다. 

준비되지 않은 자,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는 그저 조금 따뜻한 겨울의 토요일과 일요일인 것을.

오늘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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