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이태리 여행 에세이
7화 - 런던의 밤과 아침 그리고 해리포터
눈을 떠보니 창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밖에 비가 왔었는지 깊게 잠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몸이 가뿐해진 느낌이었다.
내일이면 런던을 떠난다는 생각에 이대로 숙소에 있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일단 거리를 좀 산책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가 킹스크로스 역 근처라 그런지 지금 막 도착한 여행객들이 캐리어를 끌고 숙소의 방향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여행지를 떠날 때 제일 부러운 건 여행지에 막 도착한 사람들의 모습인 것 같다.
거리는 점점 푸르게 밤에 물들었다. 어둠이 이제 막 깔린 거 같이 보였지만 실제는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9시가 넘은 시간에 해가 지는듯한 느낌을 받는 건 정말이지 오묘한 느낌이었다.
킹스크로스 옆에 있는 마치 고성처럼 보이는 세인트 판크라스 역을 지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근처에서 콘서트를 하는 듯 쿵쾅쿵쾅 음악이 들려오기도 했다.
상쾌하면서도 비가 와서 그런지 꽤 날씨가 쌀쌀해져 우리는 산책을 포기하고 문이 열려있는 펍으로 들어섰다.
주변에 문을 연 펍이 많지 않아서인지 안쪽엔 꽤 사람이 많았다. 또래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 거나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 여행지 숙소 근처에서 하루 마무리로 햄버거를 먹으러 온 가족들..
우리는 맥주 두어 잔과 햄버거 포테이토를 먹으며 영국에서 좋았던 곳, 아파서 아쉬웠던 오늘, 내일이면 가게 될 이태리에 대한 기대 등을 이야기했다.
밖으로 나오니 어둡은 더 푸르게 내려있었다. 푸른 어둠 사이로 반짝이는 불빛이 한없이 예뻤다.
다음날이 밝자 우리는 런던에서 마지막 아침은 킹스크로스 근처에서 말 그대로 영국식 아침 'English Breakfast '를 먹기로 했다.
킹스크로스 역에서는 아침부터 도착과 출발이 교차되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둘러보는데 사람들이 줄을 하나 둘 서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해리포터의 9/3/4 플랫폼 이었다. 많은 블로거들이 킹스크로스 역이 넓어서 이곳을 찾으려다 보면 꽤 헤매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말 그대로 어쩌다 보니 그 앞 이었다.
사진처럼 컬러별로 목도리를 걸어놓고 원하는 목도리를 둘러 사진을 찍게 해 주었다.
꼬마들은 창피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에게 창피하니 빨리 찍으라고 칭얼거리고 엄마들은 더 웃는 표정으로 다시 찍자고 설득하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 한참을 웃으며 보다가 나도 대열에 합류해서 어색하게 한 장 찍었다.
전속 사진사까지 있어서 사진을 찍고 나면 바로 옆 해리포터 샵에서 본인의 사진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관광객에게 인기가 좋았다.
샵의 규모는 작았지만 마법 봉이나 망토 등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즐거워할 만한 기념품이 잔뜩 이었다. 해리포터를 재미있게 봤더라면 나도 그들처럼 광분하며 샵을 둘러봤을 텐데.. 우리는 둘 다 해리포터가 좋아하는 영화 순위랑 꽤 멀리 떨어진 편이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마법봉을 잠시 휘두르다가 배가 고파져서 샵 오른편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멋스러운 복도를 지나자 바텐더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가 첫 손님인 거 같았다.
우리는 기본에 충실한 'English Breakfast '를 주문하고 레스토랑을 둘러보았다. 레스토랑이 우리가 좋아하는 모습이어서 신랑은 시종일관 사진을 찍으며 나에게 포즈를 주문했다. 서빙하는 여자분은 귀여운 커플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는데 나는 신랑이 마치 좀 전에 해리포터 포즈를 요구하는 엄머들 같아서 창피해하는 꼬마가 된 기분이었다.
식사를 하다 보니 하나 둘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듯한 여행객들이 들어왔다.
대부분은 혼자서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중년 아저씨들 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는 중년 아저씨의 모닝 맥주라니.. 하나같이 배가 통통 하게 나와서 인지 어쩐지 낯설지만 귀엽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지금 저 사람은 쓸쓸할까? 대부분은 무슨 생각을 할까? 더 나이가 들면 나도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날이 올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맞은편에서 열심히 빵에 소시지를 끼워먹다가 눈이 마두 치자 베시시 웃는 신랑을 보며 앞으로도 나 혼자 떠나오는 그런 날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우리는 늘 함께 우리 속도로 걷기 시작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