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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을 Apr 04. 2021

엄마는 아직 아홉 살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나는 어릴 때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던 아이였다.


미술학원도 다니고 싶었고,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싶었고, 그 당시 유행했던 속독 학원, 웅변학원도 다니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라 엄마는 한 군데도 보내 주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안돼!"라고 이야기를 하셨기에 아빠에게 말씀드려서 학원비를 받았던 적이 한번 있었지만, 엄마는 아빠가 주신 돈을 생활비로 쓰시기로 했고, 나는 그렇게나 원하던 학원을 다니지 못했다.

요즘 아이들에게 흔한 사교육은 어린 나에게는 사치였다.

학교 수업 외에 새로운 걸 배우고 싶고, 더 잘하고 싶었던 어린 여덟 살 아이는 우리 집이 못 산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친했던 친구가 미술학원에 가 있는 동안 밖에 있는 나는 놀이터에서 기다리면서 창문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던 친구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친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황홀하고 부러워했던 기억도 난다.


나는 그때 해소되지 않았던  욕구를 스스로 풀어내는 작업을  시절부터 시작했던  같다.

미술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 그림을 그려서 교내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내 눈에는 미술학원에 다니던 아이의 그림이 제일 멋져 보였는데, 왜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내 그림을 대표로 선정하셨고, 왜 교장선생님의 칭찬까지 받으면서 상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슷하게 그린 그림들 속에 내가 그린 아빠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나는 우리 집에서 제일 번쩍이는 냉장고 앞에서 빙그레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좀 다른 아빠를 그렸던 것 같다. 그 그림을 좋게 봐주신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이 지금 생각해보니 더 감사하다.

그 당시,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특히 미술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미술 대회를 많이 주관하셨고, 교외 미술대회에도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하셨기에 나는 운 좋게 많은 미술상을 받으면서 미술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릴 때, 나는 말을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웅변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돈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나는 학부모 참관 수업 때 하는 활동 중 연설을 맡아서 혼자 연설문을 쓰고, 연습을 해서 엄마들 앞에서 반 대표로 연설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그날 오지 않으셨다.


그때 이후, 나는 엄마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나는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결정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내 욕구를 풀어내는 작업을 그 시절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엄마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걸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내 위로 3살 많은 언니는 꼭 필요한 것은 엄마에게 이야기해서 받아내는 야무진 아이였고, 내 밑으로 9살이 어린 남동생은 엄마 눈에는 뭘 해도 채워주고 싶은 막둥이 아들이었기에, 내가 갖지 못한 유치원 졸업사진과 학원들을 다니는 동생이 참 부러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그때 해소되지 않았던 내 욕구들로 인해 딱 여덟 살에서 멈춰버린 아이를 가슴속에 숨겨두고,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내 안에 있는 여덟 살 아이 덕분에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이가 없을 때는 솔직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엄마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좋을 텐데 왜 이런 부분을 신경을 안 써주는지, 신경을 써 준다면 훨씬 아이들이 잘할 텐데... 엄마들은 왜 그럴까?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하고 듣고 보고만 했기에 엄마의 마음과 엄마의 생활에 대해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던 것 같다.

솔직하게 아이를 갖지 못했던 나에게는 엄마라는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가 있었다.


나였다면 저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내가 엄마가 되었고, 나는 여덟 살에서 멈춰있던 나에서 다행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내 아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아홉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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