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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면서 듣고, 느끼고, 깨닫는다

돈 받고 수련 중입니다.

by 이을

주말 아침, 나의 아침을 일찍 깨우기 위해 시작했던 스터디카페 1시간 청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오늘로 7주가 지났다. 매주 3일씩, 총 27시간, 27일이 지났다.

청소를 마무리한 후, 하루 인증

지난주, 사장님으로부터 감사 메시지가 도착했다.

깨진 먼지통 잠금장치를 접착제로 임시 수리해 둔 것에 대한 인사였다.

혹시 내가 깨뜨린 것으로 오해할지 몰라 길게 설명해야 했던 부분에 대한 사장님의 답은 한 줄짜리 감사 메시지로 답변이 왔다.


지난주 내 시선이 머무는 공간을 깨끗하게 정성스럽게 청소하라는 법정스님의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청소기의 먼지통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노력을 하다가 떨어져 나간 잠금장치에 순간 놀랐던 기억이 난다. 괜히 사소한 행동 하나도 오해받을까 조심스럽고, 내 진심이 왜곡될지 몰라, 자세하게 상황 설명을 빼놓지 못하는 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습관(?)적인 방식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고 길게 설명을 덧붙였는데, 사장님의 답장은 정말 짧았다.


“후속조치 감사합니다.”

라는 짧은 문장 한 줄이 오히려 내 설명보다 더 충분했고, 내 안의 긴장을 조용히 내려놓게 해 줬다.

어떻게 보면, 그런 내 모습이 너무 예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어릴 적부터 ‘잘해야 인정받는’ 환경에서 자라며 익힌 문제해결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글을 문자로 남기고 있던 그 순간, 나는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설명하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그 설명이 어떤 인상을 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인식되었다. 무언가 설명이 부족해서 께름칙하다 싶으면, '차라리 말하고 싶은 대로, 길게 설명을 하는 것이 낫다'는 나름의 살면서 생긴 곤란한 상황을 만났을 때, 선택하는 대처방식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나의 인지적 생각, "나를 돌아보는 나, 그리고 그걸 선택하는 나."의 인식은 메타인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이라는 책을 들으며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밀고, 문턱을 닦고, 쓰레기를 분류하는 반복적인 동작 속에서도 귀로 들려오는 문장 하나하나가 뇌를 일깨웠다. 책에서는 AI 시대에 인간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메타인지’, 즉 자신의 생각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수정할 수 있는 '해결능력'이라 했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지금 이 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깨진 잠금장치를 수리하고, 눈에 띄지 않는 문턱을 일부러 손이 더 가는 수건으로 닦고,

그럼에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순서를 재배열하고 효율을 계산하는 지금 이 행동들은 어느새 메타인지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평소 중간중간 눈에 밟혔던 창가 문턱 부분도, 시간을 들여 꼼꼼히 닦아냈다. 이번 주에도 평소처럼 쓰레기를 정리하고, 재활용센터에 들러 대형 쓰레기봉투를 직접 처리했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55분 만에 마무리하고, 잠시 한강을 걷고 오는 여유를 가졌다.

아침 한강


시간당 1만 4천 원. 분당 233원으로 계산해 보면, 5분을 당긴 오늘의 마무리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나는 오늘, 1,165원의 가치만큼 시간을 더 아끼면서 내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였다.


한 달 반, 27일, 27시간을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내 몸은 이제 1시간의 노동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루틴을 가지게 되었다. 몸이 익숙해지면 마음의 긴장이 풀리고, 새로운 경험에 움찔거리던 근육이 부드러워진다. 정신도 불필요한 경계에서 벗어나 편안해진다. 그 편안함을 오디오북이라는 청각적 자극을 더한다.
귀로 들어오는 이야기와 개념들은 단지 정보가 아니다. 익숙한 손의 움직임과 함께 뇌를 자극하고, 그 자극은 내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울림으로 남는다. 마치 공명처럼...


책은 AI와 함께 바뀌는 직업의 패러다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실제 사례를 예를 들어줘서 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현재 미 공군은 무인 전투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존 조종사들의 직업은 없어지는 것일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AI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지고 있는 현실에서 내 귀가 쫑긋! 하면서 집중하게 되었다.

미 공군의 무인기는 조종사가 직접 탑승하지 않고, 미국 본토의 지상 통제실에서 원격으로 조종된다.

이때, 기존 조종사들의 능력이 발휘한다. 위성 연결을 통해 천 킬로미터 떨어진 전장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조작하게 된다. 무인 전투기는 정찰, 타격,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조종사는 실제 항공기처럼 비행경로, 무기 투하 등을 제어한다. 무인 전투기의 도입으로 인해 기존 조종사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히려 능력과 기술 이해도에 따라 업무의 깊이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체가 격추되어도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왔다.


트럭 운전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무인 트럭 시대가 본격화되면, 운전자는 사무실 혹은 집에서 편안하게 속도를 조절하고, 졸음운전 없이 운행을 관리하며, 대시보드 환경을 맞춤 설정하고 전체 운송 과정을 프로그램화하는 ‘기계 조작자’가 아닌 시스템 운영자이자 전략가로 변화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단순히 트럭운전 기술만 갖추고 있을 경우, 도태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기존 구세대와 신세대가 교체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AI가 대체하게 되지만, 그 위에서 인간은 더 깊은 사고와 유연한 판단, 그리고 메타인지를 통해 ‘일의 본질’을 설계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라는 전망에 공감이 갔다.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주제로 바뀌었다. 아이를 키울 때, 많은 부모들이 ‘SKY 진학’을 목표로 삼고 대치동 학원가에 발을 들인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히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점검하고, 생각을 조정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지식은 AI도 가질 수 있지만, ‘어떤 지식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는 힘’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그게 바로 메타인지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시대의 교육이 놓여야 한다는 책의 내용은 잠시 청소하는 손을 멈추게 했다.


아직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로서, 교육자, 치료사로서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지식 전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을 점검하고, 선택하고, 조절할 수 있는 힘. 그 힘이야 말로 앞으로 AI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교육이 길러야 할 진짜 능력일 것이다.


오늘, 일요일 이른 아침의 작은 노동 속에서 그 사실을 다시, 더 깊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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