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수련 중입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진 요즘, 실내에 벌써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고, 비염인 내 몸도 적응 중인지 며칠째 컨디션이 좋지 않다. 어젯밤 몸이 무겁고, 마음까지도 지치는 느낌이 들어, 배즙에 진한 생각진액을 넣은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일주일에 세 번, 금, 토, 일의 이른 아침에 1시간짜리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금요일 아침이 정말 빨리 온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처음에는 나태해지려고 하는 나를 다잡고자 이른 아침 루틴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1시간의 시급 외에도 이 일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
예를 들면,
- 일찍 일어나기
- 내일을 위해 조금 더 일직 자기
- 조금 더 걷기
- 청소과정을 단계별로 구조화하기
- 1시간에 맞춰 효율적으로 일하기
- 시간을 단축해 보려는 시도 해보기
- 오디오북으로 책 듣기
- 정신 깨어있는 상태로 유지하기
- 브런치 글 꾸준히 써보려는 습관 들이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수확은, 전공서적 외에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1시간 동안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좋은 강의를 듣는 것처럼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참 값진 경험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일까?
오늘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어젯밤 할 일을 일들을 뒤로한 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들기 전, 마음속에 잡념이 올라왔다.
며칠 전, 지인 중의 한 분이 자신의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그분의 노력을 듣고 있자니, 얼마나 치밀하게, 도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동시에 자책하는 마음이 일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감정에 휘둘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나는, 그러한 감정들이 올라올 때면, 애써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잡생각을 누르기 위해, 온라인 서재 앱을 열었다.
그중 눈에 띈 책 제목 하나.
[나태한 완벽주의자]
제목부터 마음을 끌었다. 딱, 내 상황, 내 이야기...
책의 초반부, 작가가 말하는 게으름의 다양한 유형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금요일, 5시 반에 알람이 울렸다.
어제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몸이 어제보다는 좀 나아진 것 같다.
간단히 준비를 마친 후, 밖으로 나섰다.
스터디카페로 향하는 길, 적당히 흐린 날씨에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오늘도 날씨는 꽤 무더운 날이 되리란 예감이 들었다.
걸음을 옮기면서, 어젯밤 듣기 시작한 [나태한 완벽주의자]을 이어 들었다.
책 속 작가의 말은 마치 내 어제 감정을 정확히 짚어주는 듯했다.
"지금 모든 게 엉망이야. 전혀 달라질 게 없어"
의욕 상실의 순간, 고개를 빼꼼히 들고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던 감정이다.
나는 자주 이 감정에 끌려다녔다.
이 감정에 한번 몰입되면 감정의 늪에 빠져, 동기를 상실하게 되면서 무기력의 고리에 빠진다.
이 고리는 끊임없이 순환하며, 나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리게 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룬다.
빠져들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지금 여기'에 서서, 한 걸음씩 내 딛기 위해.
하지만, 다행히도, 난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든 덕분에 의욕상실의 깊은 늪까지는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 반쯤은 강제적으로 눈을 뜨게 만든 오늘의 할 일, 아르바이트를 위해 밖으로 나섰고, 오늘도 무사히 마무리했으며, 그동안, 나를 위한 강의를 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15분을 단축해, 1시간 동안 해야 하는 청소를 45분 만에 끝냈다.
물론, 시간이 남아도 청소를 마치고 바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벽 모서리와 걸레받이 틈새의 먼지까지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청소하면서 작가의 이야기는 충분히 나를 집중하게 했다.
'감각적 욕망'
무언가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면, 아무리 집중하려 해도, 엉뚱한 자극들이 나를 괴롭힌다.
갑자기 며칠 전 해야 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중요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해야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나는 자주 그 판단을 미루고 외면하기도 한다.
작가는 말한다.
감각적 욕망이란 단순히 시청각, 촉각, 미각, 후각등이 문제만이 아니다. 감각을 통해 주어지는 다양한 자극들, '알람소리,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이미지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결국 해야 할 일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절제하고 조절해야 함을 이미 안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저 내 감각에 끌려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매번 그렇게 살아가기에는 내 인생의 시간은 너무나도 짧고 소중하다.
감각적 자극들에 끌려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서 멀어지는 패턴.
그것이 오히려 가장 쉽고 익숙한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더 편하게, 더 빠르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있다.
작가는 이것을 '쾌락적 마비(hedonistic numbing)'라고 표현하였다.
정보를 더 빠르게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인터넷 속도는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지만, 정작 우리는 그 속도의 '혜택'을 거의 체감하지 못한다.
인터넷이 잠시라도 느려지거나 끊기기만 해도,
내 안에서 조바심 섞인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나 역시 이 빠른 세상에 익숙해져 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아마 지금은, 잠시 넘쳐야 할 타이밍인 것 같다.
마음을 돌보고, 속도를 늦춰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