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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희 Feb 09. 2020

결국은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걸로 돌아간다.

걸어서 지구 반대편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의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요즘.

"언제까지 눈치 보는 인생을 살아야 할까"라는 대화를 동료들과 많이 나누곤 했다. 휴가를 내더라도 부장님 앞에서 타당한 사유를 쥐어짜 내야만 했고 급하게 외출을 쓰는 날엔 무언가 거창한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사무실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갈 때면 최대한 안 늦은 척 외투를 손에 들고 들어갔고 먹다 만 커피는 버리기 일수였다.


왜? 눈치 보는 직장인이니까.


처음 신입사원 때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아직 회사라는 곳을 잘 모르니까, 아무리 눈치가 보여도 그냥 그러려니 나도 언젠가는 선배들처럼 행동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사일로부터 멀어지고 퇴직일에 가까워져도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근속연수가 1년, 2년, 3년이 지나도 한국사회에서의 눈치는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는 일도 점차 나아지는 일도 아니었다.


금요일에만 유독 휴가를 내는 직원이 있었는데 '너는 왜 금요일에만 휴가를 내느냐'라고 화를 내던 상사분이 있었다. 일 년에 정해진 내 휴가를 그것도 아주 알뜰살뜰 아껴서 모아둔 내 휴가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에도 장벽이 많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휴가 낸다고 할 때마다 대단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꾸며내기 시작했다. 결국은 거짓말이 또 거짓말을 낳는다. 회사는 이런 곳이다.  


지례 겁먹고 그 대단한 거짓말을 만들기까지 7년.

그래서 남 눈치 보면서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까?


나는 7년 차 피노키오였다. 남 눈치 보면서 소심하게 살아왔던 내가 휴직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는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쓰는 돈도 많은데 버는 돈까지 없어지면 남보다 지출이 두 배가 된다. 매달 월급이 주는 안정감으로 꽤나 부족하지 않게 살아온 내가 갑자기 무턱대고 쉬고 싶다고 해서 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버는 만큼 전부 써버렸던 철없었던 때도 있었고 돈이 없어도 일단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카드빚을 갚은 적도 많았다. 지금은 신혼집을 위해 받은 대출금이 조금 있다. 대출금은 그렇다 쳐도 앞으로 일 년간 소득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가장 큰 의문이었다.


휴직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타격이다. 그다음으로는 동료 혹은 후배들의 승진, 남보다 일 년 더 뒤처진다는 생각. 그리고 1년 뒤에 복직했을 때 회사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등등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 년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정신적 폭풍 성장을 해서 돌아왔을 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일 텐데 나 혼자만 동떨어져있는 듯한 괴리감을 느끼진 않을까.


휴직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휴직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휴직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일 년간 휴직하면서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지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 년 동안 오로지 나를 위해 찾아 떠나는 여행. 남 눈치 안 보고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지난날 나의 젊은 20대를 돌이켜봤을 때 기억나는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 회식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먹는 나, 월급날만 기다리는 나' 분명 회사에서 재밌는 일, 좋은 일도 많았는데 막상 기억을 회상해보니 이런 기억들만 떠올랐다. 이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이 맞았던가. 먼 훗날 나 자신을 돌이 켜봤을 때 과연 나 스스로에게 나는 떳떳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달콤한 월급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무언가 찝찝함이 항상 남아있었다. 어렸을 때 '니 꿈이 무엇이니?'라고 누가 내게 물으면 나는 그때마다 지구 정복이 꿈이라고 답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은 지구 한 바퀴였다. 근데 그 꿈을 접고 지나치게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했고 금요일만 바라보며 살다 보니 꿈은 잊은 지 오래였다. 물론 입사하기 전에도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그땐 너무 가난한 학생 신분이 아닌가.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여행도 잘 다니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돈은 벌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직장인이 되었다. 지구 정복을 하기에 여름휴가 일주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일 년에 일주일씩 단 한 번의 기회로 지구 정복을 해야 한다면 과연 60세의 정년퇴직 전까지 다 다닐 수 있을까. 그때까지 살아있긴 하겠지.라는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자꾸만 들쑤셨다.


언젠가 해야 될 일이었고 언젠가 할 일이었다.

다만 그 시기만 조금 앞 당길 뿐.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의 행복에 대해서 찾고 긴 여정을 다녀와서 얼마나 어떻게 더 성장했을지 미래의 내 모습을 보고 싶었다. 회사생활의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매일 고통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지금 내 모습. 이 휴식기가 아니면 나는 평생을 우울함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절실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을 일이었다. 주변에 교통사고, 심장마비, 우울증 등 많은 안타까운 사고를 자주 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들이 살면서 못 이룬 꿈들이 무덤 속에 그들과 같이 묻힌다. 나는 죽더라도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생을 마무리하고 싶었고 노후에 아무런 준비 없이 퇴직하는 보통의 정년퇴직자들처럼 내 젊은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꼭 지금이어야 해? 나중에 하면 안 돼

주변의 시선들


나의 스물여덟 살. 지금 이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지금입니다. 다음으로 미루면 아마 평생 기약 없는 시간을 나는 기다려야 됩니다. 곧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하겠죠. 육아휴직은 정말 육아를 위한 시간입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닙니다. 육아를 하고 자녀가 크면 그땐 이미 나의 개

인적인 시간은 사라지고 부모의 역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60세 정년퇴직 후에는 기력도 의지도 상실해서 하고 싶은 게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 결국엔 없어지게 됩니다. 있더라도 체력이 약해 지금처럼 더 많은 곳을 에너지 넘치게 다닐 수가 없습니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선 오늘의 가장 젊은 시간 20대에 '쉼'이 필요합니다.


결국은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걸로 돌아갑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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