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답지 않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시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앞서 개봉한 『썬더볼츠』는 일정 부분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며, 마블 영화가 여전히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뒤를 잇는 본 영화는 세 차례 실사화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팀을, MCU 안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시도다. 더불어 『어벤져스: 둠스데이』로 이어지는 세계관의 시작점이자, 닥터 둠이라는 핵심 인물의 등장을 알리는 중대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대 속에 등장한 이번 영화는, 적어도 "실패는 피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MCU의 확장과 함께, 이제 우리는 한 명의 캐릭터에 집중된 서사를 보기 어려워졌다. 과거 『아이언맨』 시리즈처럼 독립적인 이야기를 구축하던 시기와 달리, 현재의 MCU는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조차 기존 세계관의 타 캐릭터들과 강하게 연결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톰 홀랜드 주연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다. 1, 2편은 아이언맨의 서사적 영향 아래 있었고, 3편은 멀티버스를 통해 이전 배우들까지 끌어들이는 초대형 교차점을 형성했다.
이처럼 다수의 캐릭터가 충돌하고 협력하는 서사는 MCU의 강점이 되었지만, 동시에 주인공 고유의 서사가 흐려지는 단점도 초래했다. 중심 인물의 이야기는 점차 희미해지고, 세계관 중심의 전개 속에 개별적인 색채를 잃어간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의 그림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점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우려는 네 명이 한 팀을 이루는 『판타스틱 4』에서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차기 어벤져스 서사와도 직접적으로 이어져야 하므로, 독립성과 서사의 밀도가 더욱 위협받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영화 초반부터 해소된다. 영화는 주요 배경을 멀티버스 속 ‘지구-828’로 설정하며, MCU 본편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또한 네번째 실사화라는 점을 고려해 캐릭터들의 기원 서사는 과감히 생략하고, 이미 ‘세계의 영웅’이 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같은 설정은 레트로 퓨처리즘을 바탕으로 한 세계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관객을 보다 몰입감 있는 서사로 이끈다.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어로물의 방식으로 전개된다. 세계를 위협하는 악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주인공들의 대결 구도가 중심이다. 하지만 여기에 본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개성이 녹아 있다. 바로 고전 SF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경이로움과 ‘가족’이라는 주제의 결합이다. 이전의 마블 영화들에서도 SF는 자주 활용되었다. 『아이언맨』은 기술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유머와 환상성을 중심에 두었다면,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레트로 감성의 우주 탐사극에 가까운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중반부, 갤럭투스를 찾아 떠나는 시퀀스는 우주 탐사극으로서의 긴장감과 상상력을 가장 잘 드러내며, 본작이 가진 독창적인 색채를 극대화한다.
‘가족’을 주제로 삼았던 마블 영화는 여럿 있었지만,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그 주제를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서사의 본질이자 팀의 정체성으로 풀어낸다. 세계를 구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네 사람은 함께 식사하고 말다툼하고 웃는, 지극히 인간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는 이처럼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를 통해 ‘우주적 위협’이라는 거대한 테마에 맞선다. 전 세계와 한 아이의 생명, 거대한 행성과 작은 지구, 은유적이면서도 명확한 대비를 통해 영화는 크기와 무게를 주제적으로 활용한다. 이처럼 ‘작지만 강한 유대’로 세계를 구해내는 그들은, ‘판타스틱 4’라는 이름에 담긴 상징을 성공적으로 재현해낸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전반적인 서사가 위협에 대한 대응과 탐사 여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히어로 각자의 능력을 활용한 액션 장면은 주로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미스터 판타스틱의 능력은 영화 막바지 전투에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전투보다는 지성과 과학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이기에, 이러한 구성은 캐릭터의 정체성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전투는 그간 쌓아온 감정과 서사가 응축되어 터지는 장면으로 기능하며, 액션의 양적 만족은 부족할 수 있어도 서사적 흐름 안에서 충분한 개연성과 완결감을 제공한다.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와 『썬더볼츠』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상황에서,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은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새로운 시작’이 될 만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MCU의 33번째 작품이자, 오랜만에 주연들에게 집중하며 고유한 색을 살려낸 본 영화는, 마블이 아직 보여줄 것이 남아 있음을 증명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