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단계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해가 질 때 즈음하여 퇴근하는 계절이 왔습니다. 하루에 몇 분 이상 햇볕을 쬐어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 있습니다. 식물도 아닌 녀석이 광합성을 하러 엉덩이를 떼어 봅니다. 잠깐의 햇살이지만 최대한 많은 비타민 D를 합성하기 위해 찰나의 순간을 붙잡아 봅니다. ‘Seize the day!’ “오늘을 즐겨라!” 혹은 “기회를 잡아라!”라는 말처럼 햇빛을 붙잡습니다. 햇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확실히 햇빛을 보지 않은 날에 덜 행복한 것을 보면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신분으로 지낸 지 12주가 흘렀습니다. 12주의 과정을 잘 마친다면 그제야 정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원이 되는 것입니다. 99%의 확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98.7%의 물과 1.3%의 커피 성분이 섞인 액체를 ‘커피’라고 하는 것처럼 1%의 가능성은 조바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겠지만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더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명 자고 일어났는데 개운함보다 피곤함이 많은 몸을 이끌고 첫 차를 탔습니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할 일이 없지만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괜히 뒤적거렸습니다. 사회화되어 가는 과정에 순응하며 드는 생각을 흘려보내고, 하고 싶은 말을 삼켰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삼켰고 그 말들은 메아리가 되어 마음 이곳저곳에서 울리고 또 울렸습니다. 그렇게 겉으로 또 속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12주간의 시간을 두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써봅니다.
결과를 알려주는 메일이 왔습니다. 역량은 우수하지만 한정된 인원으로 인해 아쉽다고 말하던 메일에 익숙한 저로서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은 만큼 핵심인재로 성장할 것이라는 내용의 메일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아무튼 참 잘된 일입니다. 소중한 분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당신들의 응원이 있어 잘 해낼 수 있었다고 감사하다고, 잘 해낼 거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전합니다. 특히 마음이 심란하고 의심으로 가득했던 순간 머리를 가볍게 해준 분께 이 소식을 들려드리며 정성과 애정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 그렇게 하나의 문을 열고 다음 ‘스테이지’로 향합니다.
실제로 다음 ‘스테이지’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긴 것 같고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이 ‘잘 사는 것’은 몇 년째 답을 구하지 못하였고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답을 못 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고민을 하더라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고민하고 있는지는 꾸준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 혼자만의 미래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할 미래에 대해나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길을 앞에 두고 괜한 마음에 물어봅니다. “진짜 이제 고생 시작입니다. 고생을 앞둔 제게 하고픈 말은 무엇인가요?” 가끔 생각지 못 한 통찰력과 본인만의 경험으로 큰 도움을 주시는 분께 여쭤보았습니다. “버티세요. 그것이 나중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뭐가 돼도 되니까 버티세요. 버티는 대가가 월급이라 생각하시고... 세상이 이렇게 나를 미치게 하는구나 싶을 때 통장 잔고를 보시오.” 라고 답변이 왔습니다. “비전, 적성 다 좋지만 현실을 현실. 돈이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 그 밑바탕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버텨.” 되게 현실적인 한마디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전과 꿈에 대해 고민하는 자에게 현실도 바라봐야 한다고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진정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돈이 우선이다.’는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경제적인 여유는 중요하고, 힘든 순간에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정도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예삿일이 아닌 세상 살아남기에 오래도록 명심해야 할 것 같은 조언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저만의 원동력을 찾아 나섭니다.
부족함으로 가득 찬 저에게서 귀한 것을 알아봐 주시는 분께서는 고민 많은 제게 또 다른 따스함을 전해주셨습니다. 본인의 곁에서 여유를 배워보라고. 재수부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혹독히 거쳐 취업까지 쉴 시간이 없었지 않느냐고. 그러니 한동안 여유를 즐기면서 쉬어보라고. 본인의 곁에서. 쉰 적이 없지는 않지만 잠깐의 쉼 속에서도 은근한 불안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일렁입니다. 위로를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이곳 서울에서 위로를 받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전쟁에 임하는 장수가 마음 약하게 먹으면 이미 패배한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괜히 더 강하게 마음먹었었고,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그런 저를 예고도 없이 너무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어 놀랐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위로해 줍니다. 메마르고 척박했던 마음에 단비가 내립니다. 다음 스테이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기대됩니다. 분명 처음 마주한 어려움들에 걱정하고 아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저만의 원동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여유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마 관성처럼 저는 또 바삐 살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해줄 원동력을 찾았고,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그 어려움들 마저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한 걸음 나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