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

by 이음


책을 읽어야겠다.

책을 읽지 않은 지 두 달이 넘었다. 핑계를 대자면 첫 번째는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고, 두 번째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어 도서관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전에는 책을 많이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많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것에 비해 나는 다독하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씩이라도 평생 꾸준히 독서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되어서이다. 혹독한 사회생활을 경험했고 도망쳤던 스물네 살 무렵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돈은 부족하고 시간은 많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살면서 꼭 해야 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아서 나는 되는대로 삶에 휘둘리며 살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보았고,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호기심이 생기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기까지 책으로 채웠던 그 긴 공백은 내 삶에 큰 전환점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책을 꾸준히 읽기 위해 새해마다 100권씩 읽자는 목표를 세우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출퇴근 시간 짬짬이 읽는 정도로 일 년에 고작 몇십 권을 채우는 정도인데 그마저도 올해는 사상 초유의 전염병인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더 힘들어졌다. 모든 책을 사서 볼 수는 없으니 도서관을 애용하는 편인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매번 휴관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도서관을 사용하는 일은 어려웠다.


도서관에 가지 못하면 전자책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바스락거리며 종이 넘기는 소리도, 한 장씩 손에 닿는 감촉도, 쿰쿰하게 엉킨 종이와 잉크 냄새도 없는 딱딱한 평면의 모니터를 마주하는 일이 나에게는 어딘가 아쉽고 즐거움이 상실된 독서다.


나에게 독서는 책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된다. 어디선가 추천을 받거나 우연한 기회로 미리 알게 되어 궁금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책도 있지만 가끔은 아무 목적 없이 가판대 위에, 책꽂이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끌리는 제목을 보고, 목차를 훑어보고, 첫 장의 몇 줄을 읽어보고 계속 읽고 싶은 책들을 한 권, 한 권씩 골라 담는다.


그러나 심사숙고해서 골랐어도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독서는 인내와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고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어떤 책은 조금만 읽어야지 했는데 술술 읽혀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책은 내용이 어려워 중도에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읽는 내내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만, 그 안에서 한, 두 문장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재미있게 읽었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책도 있다. 언젠가 읽었을 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었을 때는 이런 내용이었나 싶게 마음에 와 닿기도 하고,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이전만큼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마음에 드는 책이 없듯이, 누구에게나 별로인 책도 없다. 그래서인지 생각지 못한 순간에 내게 딱 맞는 책을 만나게 되는 일은 예기치 않은 선물과도 같다.


마음이 힘들고 답답할 때는 항상 책을 찾았다. 책에서 모든 답을 찾을 순 없었지만 힘들 때마다 일어설 힘을 주었던 것은 언제나 책이었다. 책을 고르고, 만지고, 보고, 읽으며 책 속의 문장들을 스스로에게 되묻고, 나름의 답을 찾아 보고, 감상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을 얻는다. 나는 책이 좋고, 책을 읽는 과정이 좋고, 한 권을 다 읽고 뿌듯한 기분이 좋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하며 노력하는 내 모습이 좋다.


책은 내가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조력자이자, 어둠 속에서 방황할 때 길을 비추는 인도자였다. 책을 읽으면 불안하고 혼란스럽던 내 마음이 얼마나 고요하고 단단해지는지, 내가 나를 얼마나 신뢰하고 믿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직장생활도 경력이 붙을수록 일이 수월해지는 것처럼 삶도 나이가 들수록 편해질 줄 알았는데 살아갈수록 삶은 점점 더 어렵고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불확실한 삶에서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수많은 타인의 목소리와 유혹에도 자신의 주관을 지키는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은, 언제든 방황하고 좌절하겠지만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것을 믿는다는 것이며, 괴롭고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언제든 움츠러들고 주저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책을 읽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