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시작한 정리

죽기 위해 시작한 정리

by 이음

무소유, 미니멀라이프, 간소한 삶.


사람들은 너무 물건이 많아서, 집이 좁아서, 정리가 안 돼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정리를 시작했지만,

나의 시작은 죽기 위해서였다.


어린 시절, 방치와 무관심 속에서 오랜 시간 위축되고 무기력하게 자라왔으나

이십 대 중반에 독립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라오는 동안 경험이라고는 TV 속 세상이 전부였던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어릴 때와는 180도 달라져 밝고, 독립적이고, 호기심이 넘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삼십 대 초중반을 넘어설 때 삶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 찾아왔다.

다시 위축되고 무기력해졌다.

그제야 나는 어릴 적의 내가 오랜 시간 우울한 상태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내 고통을 담고 있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고통이 넘어와도 품어주지 못했다.

위로와 이해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는 호소에 나는 어설픈 위로 대신 냉정한 조언 따위를 건넸다.

나는 그들에게 원하는 말을 해줄 수 없었고,

그들은 자신이 힘든데 그 고통을 받아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원망하고 내 탓을 하며 떠나갔다.


‘다들 힘들만한 상황이니 그렇겠지’ 하다가도

‘말 안 한다고 나는 안 힘든 줄 아나? 왜 하나같이 자기 생각만 하지?’ 하는 일말의 원망도 있었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 당시에 나도 힘들어 죽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으면 그들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었을까?

적어도 그때 그들이 분출한 분노와 폭언에는 나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마음이 단 한 줄도 없었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 하나에도 아픔이 물결쳤다.

결국 나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하지만 곁에 있는 가족까지 멀리할 수는 없었다.


자기 고통이 크다고 울부짖는 사람 앞에서 고통으로 배틀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많이 고통스럽다고 울부짖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상처가 되는 그 앞에서

상대방이 호소하는 고통과 불행을 홀로 받아낼 때도 나의 내면은 무수히 부서지고 파괴되고 있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었다.

고통의 크기를 재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고통이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실체가 없다면

그건 엄살에 불과한 해프닝이었다.

어떤 새벽에는 혼자 방에 들어앉아 목을 졸라대다가도

다음 날 아침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가족이라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그 마음 한쪽에 ‘이런 나에게는 누가 손을 내밀어 주지?’하는 서글픔이 밀려들어도

‘내 마음이 더 강하고 튼튼하니까.’ 하면서 스스로 달래야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회복을 위한 매일의 다짐은 무색해져 갔다.

그 감정의 배출구 노릇은 언제 끝날지 몰랐고 나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희망을 잃은 지는 오래였고 살아야 할 이유는 한 조각도 없었다.

아무런 길도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명료했다.

나는 죽어야겠다.

죽음이라는 막연한 단어가 결심의 실체를 입는 순간이었다.


막상 죽기로 결정하자 꽤 현실적인 생각들이 딸려왔다.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유서를 썼다.

남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내 물건을 스스로 정리하고

장례비에 조금이라도 보태놓기 위해 쓸만한 물건은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이사 다니면서도 무겁게 이고 지고 다니던 오래된 물건, 잡동사니, 소중하게 움켜쥐고 있던 것들을 미련 없이 찢고, 버리고, 중고 물품으로 내놨다.


정리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니 대단한 삶은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었다 자평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외롭고 슬픈 순간에도 먼저 손을 내밀고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다.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아등바등하면서 혼자서 이룬 자잘한 성취들에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다.

부족하다, 억울하다, 아쉽다 토로하면 한도 끝도 없을 삶이었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났을 때는 미움도 원망도 후회도 딱히 없었다.

그 끝에 내가 바랬던 것은 오로지 민폐 끼치지 않는 것이었고

그래서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근심이 되고 싶지 않아

언제 가도 후회 없는 삶이었다며 가벼운 대화 속에 넌지시 진심을 끼워넣기도 했었다.


그렇게 죽음 앞으로 가기 위해 했던 그 행동들이 차츰 나를 되살려 놓았다.

생전 들춰보지도 않았던 오래된 편지들 안에서 나의 선함을 알아봐 주던 이들의 마음과

잊고 살았던 내 안의 따뜻한 면들이 피어올랐다.

목표도, 계획도 없이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겨우 몇천 원짜리 중고 물품 하나를 팔기 위해 아침 일찍 씻고 외출할 준비를 했다.

몸을 움직이고,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중고 거래를 하면서 돌아오는 소소한 선물, 작은 호의, 엉뚱한 유머들도 나를 숨 쉬게 했다.

그들의 미소와 친절을 양분 삼아 나는 삶의 작은 불씨를 키워냈고 한 발씩 다시 세상을 향해 내디뎠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지켜주는 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지인이라고 세상은 오랫동안 말해왔다.

그게 세상의 보편적 진리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에겐 오히려 가장 가까운 가족, 지인들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나와 전혀 관계없는 낯선 이들의 친절과 호의가 나를 일으켜주었다.


그들은 내 안의 고통을 몰라서 그 고통을 증폭시키지도 과장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들에게 이해나 위로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데,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본 슬픔과 고통은 전염되고 상대방까지 불행하게 만들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상대방을 불행하게 만들면서까지

위로와 이해를 받아야 하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내가 아픈 만큼 상대방도 아픈 법이니까.


다만 어두운 시절을 지나고 난 후에 나는 가장 가까운 지인들에게 조금씩 내 어둠을 꺼내 놓았다.

고통의 독이 다 빠져나가고 바삭하게 건조되어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때 툭 꺼내서 그렇게 내가 괜찮아졌음을 확인했다.



어두운 시절에 남이 내 곁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해가 지면 심지어 내 그림자도 나를 버리기 마련이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 시리아 법학자가 했다는 이 말.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이 말이 좋다.


가장 힘든 시절에 나조차도 나를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듯 기대하며 사는 걸까.

어쩌면 그게 더 삶을 외롭고 고통스럽게 만들어왔던 게 아닐까.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내 슬픔의 짐을 함께 짊어지는 일이 아닌

친절한 미소와 엉뚱한 유머가 될 때 세상의 슬픔은 비로소 반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내가 정리를 시작한 이유는 죽기 위해서였지만,

지금도 계속 정리하는 것은 그것이 나를 해치지 않고 삶을 견디게 만든 힘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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