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숨 해, 바다

바다 앞에 서는 이유

by 이을

대구 분지 출신인 나는 결혼 적령기가 되어 바다 사나이 포항 남자와 바닷가에서 데이트를 했다. 몇 번의 데이트를 하며 이 남자가 바닷가 지역에 살아서인지 속이 게 영글고 포용력이 넓어 나를 다 받아 줄 바다처럼 보였다.

태생부터 진 사내로 성장하기까지 눈과 가슴에 드넓은 바다를 품고 살았겠구나라는 혼자만의 망상 속에 이 남자를 환상 속의 그대로 만들어버렸다. 드디어 나는 내가 사랑하는 바다를 실컷 누리는 항 지역에서 다를 품은 남자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신혼 때 남편과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일로 게 다었다. 일방적으로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남편은 연애 때처럼 를 살갑게 달래주지 않고 입을 닫은 채 자신만의 굴로 들어가 버렸다. 명히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함을 알았지만 나는 한 자존심을 세우며 신혼의 기싸움을 작했다. 리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낯선 포항에 친구가 없었다. 내가 곳에서 아는 사람이라고는 시부모님밖에 없었다. 어디 아는 곳, 갈만한 곳도 없어 무작정 차를 몰아 편과 몇 번 데이트를 갔던 칠포 바닷가로 갔다.

여름 무더위에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바다에 몸을 담그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혼자 울기도 하고 마음을 달랠 곳을 찾았건만 주말이라곳에는 행복해 보이는 족 단위 사람들로 붐벼 나의 처량함은 더 크게 느껴졌다.

다 앞에 서서 깊은 큰 숨을 고르고 은 푸른 바다 빛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 곁에 있었으면 하고 떠오른 사람이 남편이었다. 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은 대전 태생으로 중학교 때 포항에 이사 왔고 바닷가에서 제대로 등을 태우며 놀아보지 않은 육지 남자였다. 그 순간 결혼의 환상이 벗겨지고 결혼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라진 오후의 시원한 바닷바람 앞에 마음이 한결 정화가 되어 전원을 꺼두었던 폰을 켰다. 나를 찾는 다급한 부재중 통화 기록이 없음을 확인하고 가 포항에 존재하는 유일한 친구에게 큰 잘못을 했구나라고 반성을 하며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몇 년 전, 바닷가에서도 마스크를 써야만 했던 행한 절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과 함께 사람이 없는 한적한 바닷가면 어디든 차에서 내려 마스크를 훌훌 벗고 우리만의 시간을 즐겼다. 도 자유롭게 쉴 수 없는 세상에서 눈치 보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바다가 내 삶 가까이 있어서 참 감사했다.다는 나의 숨 터, 숨 해였다.

마음에 묵직함이 쌓일 때면 이름난 이정표가 없는 한적하고 탁 트인 바닷가 뷰 앞에 주차를 하고 간이 의자를 펼쳐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바라보며 평온을 찾다. 것이 나의 소소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시원한 바닷바람 한가운데
나를 하루 종일 세워 놓는다.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내 안의 답답함을 뱉어본다.
뻥 뚫린 속을 여유로 채우고
좁아진 마음을 넓혀본다.
이 순간 나는 그 누구도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넉넉함도 생긴다.



나는 포항에 정착한 지 10년이 되었다. 바다를 가까이하며 바다 앞에 선 지 10년이 된 것이다. 나의 속 사람이 더 깊고 넓어졌는가? 여전히 얕고 좁다. 평생 나의 눈과 마음에 바다를 더 많이 담고, 바다 앞에서 코로 깊은숨을 내쉬며 나를 다 받아주는 바다처럼 나와 이어진 것들, 인생의 순리를 거뜬히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살내고 싶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들에게 나의 이상을 투영해 본다. 아들이 자신의 음에 거센 파도가 이는 사춘기를 보낼 때 엄마에게 말 못 할 고민을 바다 앞에 풀어놓고, 렁이는 도에 몸도 맡겨보고 파도를 거슬러도 보며 신의 단단함을 다져가고, 이 망망대해 바다처럼 넓고 깊은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는 엄마의 환상 속 멋진 바다 사나이. 환상이 커져간다.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