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너희를 그렇게 불렀다.
"잘 살고 계십니까? 저 박지성입니다. 성시경이 8집 신곡을 냈나 봐요. 라디오에서 성시경 신곡이 흘러나와서 듣다가...... 생각이 나서 연락을 드립니다."
지성이 네가 오랜만에 연락을 준 야심한 밤. 그 밤 잊고 지냈던 너희의 이름이 떠올랐다.
'스타워즈'. 나는 너희를 그렇게 불렀다.
너희를 처음 만난 2012년 3월의 강렬했던 새 학기 첫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삐딱한 자세와 거친 행동들로 서로를 탐색하고 있는 16세 남학생 스물일곱 명 앞에 태연하게 서있었다. 1년 동안 잘 지내보자고 말은 했지만, 그 순간 《야수의 세계 ㅡ흥분의 도가니, 뒤죽박죽 사춘기 전쟁 서사시》의 서막이 열렸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서열 정리가 어느 정도 된 4월부터 이름값 제대로 하는 축구부 동아리 주장 박지성과 그를 따르는 축구부 단원 10명이 뭉친 우리 반의 5교시는 매일이 생지옥이었다. 너희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수업 시작종이 울린 직후 맹수의 울부짖음을 하며 교실로 달려왔다. 그리고 365일 덥다며 윗옷을 벗고 부채질을 해가며 수업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축구 시합에서 이기면 이겼다고 지면 졌다고 포효를 질러댔으니...... 우리 반이 수업하기 힘들다는 고충을 여러 선생님께 듣고 죄인 된 마음으로 1년을 살았다.
너희는 단체로 나에게 혼이 많이 났다. 훈계 뒤에는 짜장면이 기다렸다. 나는 짜장면 앞에서 너희에게 한번 더 잘하겠노라는 너희의 얇은 다짐을 받아냈다. 혼이 난 다음날이면 너희는 내가 애정하는 성시경 노래를 함부로 떼창으로 불렀다. 심심한 반성문이겠거니 생각했다.
내가 임시 반장으로 지목했던 축구부 보석이는 관심이 즐거웠는지 생애 처음 반장선거에 나와 축구부원의 장난스러운 지지를 받아 덜컥 반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반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동준이가 전교 회장에, 준석이가 전교 부회장 선거에 나가 각각 당선되어 당선증을 들고 내 앞에 섰다. 그해 사내 녀석들의 야망, 권력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되었다. 저마다 몸으로 눈빛으로 욕으로 자기주장을 하는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별들의 전쟁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때 내 월급의 몇 할은 너희의 짜장면 값이었다. '1학기 박지성의 난'. 수업 중 교과 선생님께 오해를 받고 혼이 나서 반항마가 된 지성이가 학교 밖으로 나간 날이 있었다. 그날 퇴근 무렵, 내 연락이 닿지 않는 지성이를 지성이 엄마도 아닌 진수가 찾았다며 배고프다고 내게 연락이 온 날, 너희는 짜장면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말랑한 사춘기 속내를 드러냈다. 진수와 동준이가 호기심에 동네 널브러진 고장 난 오토바이가 시동이 걸릴까 하며 시동을 걸어 타보았다고 한 날이 있었다. 다음 날, 동준이가 전교 회장직을 내려놓고 징계를 받았다. 나는 내 말을 안 들어먹는 철딱서니 없는 너희를 데리고 또 학교 앞 반점으로 갔다.
내 앞에서 혼이 나서 우는 아이, 미안하다고 우는 아이, 억울해서 화가 난다고 우는 내 아픈 손가락들을 따라 나도 많이 울었다. 나도 그해 단기 경력자로 각종 민원과 너희가 친 사고들을 수습하며 억울해서, 미안해서, 화가 나서 퇴근 후 밤마다 많이도 울었다.
헤어짐이 다가오는 2학기 중순부터 너희는 호르몬도 안정화가 되었고 고입에 집중하며 휴전을 선포했다. 나의 애씀이 통했는지 너희는 사나이 의리로 평온한 마지막 한 달을 나에게 선사해 주며 요란하게 졸업을 했다. 고맙게도 너희를 품은 그해, 너희에게서 도피하고자 만났던 남자에게 마음 기대며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 결혼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너희는 하얀 봉투에 부조금도 조금 넣어 나의 결혼식에도 와주었다. 삶의 근거지를 타 지역으로 옮기며 너희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겠거니 생각했다.
간간히 너희는 나를 잊지 않고 나에게 연락을 주었다. 대학교에 들어갔고 곧 군대를 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성이는 군대 가기 전 고속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나의 포항집까지 찾아왔다. 나는 만삭의 모습으로 늠름한 성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러 간다는 그러나 내 앞에서 여전히 10대처럼 까부는 지성이를 대견하게 바라봐주었다. 그때 너희는 왜 그랬을까라는 나의 물음에 지성이는 호르몬의 지배를 받던 그해를 떠올렸다. 너희는 아마 불쾌하고 무질서한 마음의 지배를 받던 낯선 파충류였을 거라고 자백했다. 별들은 내전 중이었구나. 묵힌 야속함이 녹아내렸다.
그러고 몇 년 뒤,
"선생님, 저희 모였어요. 근데 진수는......"
진수 장례식장에 모여 지성이가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를 주었다. 이십 대 중반도 안된 꽃다운 우리 진수가, 똑똑하고 호기심 많고 나를 가장 위로해 주었던 속 깊은 진수가,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나 커서 벅참을 반항으로 표현했던 진수가 이 세상에 없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반짝이던 별이 진 밤, 수화기를 붙잡고 같이 많이도 울었다.
번갈아가며 나에게 안부를 전하는 병운, 동준이 너희들 목소리에 나는 먹먹함을 어찌할 바 몰라서 당장이라도 너희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너희에게 짜장면을 사주고 싶었다. 그때처럼 같이 울고 싶었다.
그러고 또 몇 년이 흘러
"선생님. 저 순찰 돌다가 순찰차에서 성시경 노래 듣고 선생님이 생각나서 연락드리는 거예요. "
축구 선수가 아니라 경찰이 되었다는 어른 박지성. 네가 다녔던 중학교 근처를 지나며, 우리 자주 갔던 반점도 지나며 너처럼 잠시 파충류가 되는 청소년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아이들에게 앞에 계신 훌륭한 선배님(?) 말씀 잘 듣고, 특히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얼른 집에 들어가라고 타이른다는 녀석. '이런 날이 왔구나'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너희와 지낸 그 한 해는 내 젊음과 생애 온 에너지를 갖다 퍼부은 시간들이었다. 나는 너희의 축구 경기가 있으면 달려갔고, 별들의 승리를 기원했으며, 팔닥팔닥 뛰는 순수한 열정에 너희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때 너희는 나의 진심을 알아주었다. 요즘은 진심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스타워즈, 너희와 함께 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서른이 된 너희가 '뭉치면 두려울 것이 없었던 그때'처럼 모여 다시 나에게 연락을 준다면 그때는 짜장면값 아닌 술값을 계산해 주마. 어른이 되어 세상에서 치를 별들의 전쟁에서 너희가 다치지 않고 승리하길 마음으로 빌어본다. 성시경의 8집 신곡을 듣고 너의 추억 속 내 생각이 떠올라 이 야밤에 기꺼이 연락을 준 박지성. 너를 생각하니
별들의 전쟁 속에, 너희의 사춘기 추억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기를 암만 생각해도 잘한 듯싶다.
(※박지성 외의 아이들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