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
"최진사댁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갔대."
"왜?"
"딸 부잣집에서 셋째 딸이 제일 예쁘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거든."
"엥? 둘째 딸 중에 예쁜 사람! 여기 있는데?" 하며 엄지 손가락으로 옆에 앉은 나를 콕 짚었다.
아들이 말하는 그 둘째 딸이 나다! 이때껏 살아오면서 둘째 딸이 예쁘다는 말을 아들에게 처음 들어보았다. 아들이 엄마 마음에 분홍빛 봄바람을 살랑 불어넣어줬다. 덩달아 내 볼도 분홍빛. 셋 중 하나인 둘째의 삶을 겪어보지도 않은 녀석의 말 한마디가 고마워 저녁 반찬으로 아들의 최애템 분홍 스팸을 꺼냈다.
흰쌀밥에 노릇하게 구운 스팸 한 조각을 올려주며 외동아들에게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들은 동생에게 부모의 사랑과 자신의 소중한 장난감을 뺏길 것 같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모의 사랑이 나눠야 할 케이크인 줄 알고, 형제가 없는 지금 삶이 좋다는 아들의 말에 셋 중 둘째인 내 어릴 때를 떠올렸다.
[케이크 나누던 기억]
나는 네 학년 차이나는 언니와 두 학년 차이나는 남동생이 있다. 아들 귀한 집에 시집와 나를 낳고 딸딸이 엄마가 된 친정 엄마는 내가 태어난 3년 뒤에 남동생을 낳고 숨통이 트였다고 했다. 언니는 맏딸이라서 귀했고, 동생은 아들이라 그저 애지중지했을 것이다.
언니가 쓰던 물건들을 받아쓰며 옷을 물려받아 입었고, 새 옷은 중성적인 색으로 사서 남동생과 키가 고만고만해 같이 입었다. 첫째는 처음이라서 동생은 남자라서 받는 새것의 혜택들을 둘째인 나는 그다지 누리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둘째인 나만 돌사진이 없다. 어릴 적 사진 속 나는 뽀글 파마머리에 미운 얼굴로 울고 있는 모습이 많다. 언니는 애기 때 인형 같아서 동네 사람들이 예뻐했고, 남동생은 훈남이라 버스에서 모르는 여성들에게 쪽지도 받았다. 우리 부모에게 인물 좋은 둘은 내로라하는 자랑거리였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 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없었다. 사랑받기 위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할 일을 하든지, 공부를 잘하든지 등의 경험을 통해 눈치와 적응력을 키웠다.
내 나이 6살 때 추운 겨울, 이웃 아주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남동생에게 빵을 뺏기기 싫어 그 어린것이 대문 앞에 서서 허겁지겁 빵을 먹더란다. 엄마 옆자리도 동생에게 빼앗겼고, 둘이 싸워도 누나라고 먼저 혼나고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남동생을 챙기며 양보해야 했던 것들이 많았다.
나도 어릴 때는 부모의 사랑이 케이크인 줄 알았다. 내 케이크를 조각내서 언니와 남동생에게 나눠줘야 하는 줄 알았다.
가족이라는 우주에는 모든 은하계를 위한 자리가 있다.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면, 다시 말해 사랑할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새로운 중력이 생기면서 우리 주변의 공간이 변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며 어느 책에선가 읽은 구절이다. 정말 그럴까?
[내 은하계가 빛나던 날의 기억]
곰곰이 생각해 보니 셋 중에 나만 누렸던 공간이 있었다. 내가 아프던 날, 밤을 새며 나를 간호해주셨던 엄마의 끊이지 않았던 간절한 기도 소리와 그 밤 요플레 대형 사이즈를 혼자 다 먹었던 기억난다. 또 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가 하고 싶다고 떼를 부려서 엄마는 걸스카우트 단복을 거금을 주고 내게 사주셨다.
언니가 시집을 가고 동생이 일찍 취업해 독립했을 때 나만 집에 머물렀던 기간이 꽤 된다. 시집을 가기 전까지 부모님의 외동딸로 지냈다. 다 큰 성인인데 막차가 안 끊겼는데도 귀가 독촉 전화가 왔고, 부모님과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나눠야 했고, 모든 관심이 나에게 쏠리니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이게 온 기대와 관심을 받는 외동의 삶이구나 하고 그때 잠깐 느꼈다. 둘째라서 마냥 서럽다고만 생각했는데 가족의 우주 안에 내 따뜻한 공간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둘째라고 나를 덜 사랑한 게 아니었고, 언니와 남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긴 것도 아니었다. 내가 태어난 순간이나, 남동생이 태어난 순간에 우리 집 우주는 공간이 변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은하계의 출현은 축하받아 마땅했다. 가족이라는 우주는 무한하니까.
둘째 딸인 엄마가 예쁘다는 너에게......
네 한마디에 삼남매 같이 살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어. 나처럼 같이 부대끼며 놀고 의지할 형제 없는 네가 가끔 애처로워 보일 때가 있어. 네게 경쟁, 결핍이 없는 삶을 살기보다 둥글게 깎이며 사는 삶을 경험하게 하고 싶어, 새로운 은하계의 출현으로 가족의 세계를 넓혀주고자 하는 미련도 있었으나 그 생각은 올해 접었단다. 더욱이 너는 부모 사랑 케이크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 눈치구나.
친정 엄마와 긴긴 전화 통화를 했다. 둘째 딸이 잘한다 최고다 하시다가 통화 내용은 타지에 사는 남동생 걱정으로 옮겨간다. 슬슬 배가 아파온다. 엄마 나중에 통화해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나도 안다. 엄마는 셋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기도 한다는 것을. 하지만 불쑥 올라오는 이 모남은 둘째로 자라면서 착장 된 것일까? 내 미성숙함일까? 가족은 경계 없는 우주라는데 내 속은 엄마 앞에서 간장 종지만 하여 여전히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쟁이다.
오늘의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