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온전한 소망을 담아서 간절히 돋을새김
낯선 번호로 온 부재중 전화 한 통.
"아들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읍니다. 빨리 와주세요."라는 그 번호로 온 문자메시지 한 통.
나는 올해부터 고등학교 시간강사로 근무를 하게 되어 새 근무지 교무실에서 계약서를 쓰고 있던 중이었다. 낯선 번호의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철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전력질주를 해 학교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로 달려갔다. 차에서 잠시 엄마를 기다리던 아들에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혹시 낯선 곳에서 뉴스에서 보던 흉흉한 유괴 사건에 휘말린 건 아닌지 하는 차가운 생각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까워지는 차, 까만 차창 안에 다행히 올해 3학년 되는 아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날 보자마자 울음이 터진 아들을 안아 달래고 낯선 번호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은 후, 그 번호로 "어르신, 감사합니다. 아이를 잘 만났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하고 문자를 넣었다.
차 문을 잠그고 책을 읽으며 기다리다가 10분 후면 돌아온다던 내가 돌아오지 않자, 평소에는 겁보인 녀석이 예상치 못하게 나를 찾으러 차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주차장 가까운 학교 정문 앞에서 지나가는, 외할아버지를 닮은 이에게 전화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분은 아이에게 휴대전화기를 빌려주시고는 차에서 문을 잠그고 엄마가 곧 올테니 기다리라고 타일러 주셨단다. 낯선 곳에서 좋으신 분을 만나 천만다행이었다.
그날은 네게도 내게도,
'돌아올게, 다녀올게, 갔다 올게' 우리가 나눴던 일상의 그 흔한 약속들이 다르게 다가온 날이었다.
[ "돌아올게" ]
내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을 따라 휴가객으로 붐비는 여름 바닷가에 갔었다. 아빠의 트럭에 철제 의자를 싣고 배달 겸 외상값을 받으러 간 것이었지만 엄마 옆에 나란히 앉은 동생과 나는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할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바닷가에 텐트를 쳤고, 외상값을 받고 금방 돌아오겠다는 아빠를 기다리며 한나절을 보냈다.
그 시절은 휴대전화기도 없었고, 편의점도 없었다. 그저 바닷가 앞 노상에 파는 먹을 것들이 전부였다. 낯선 곳에서 연락이 닿지 않는 아빠는 오지 않고 배가 고픈 우리 남매는 핫도그를 사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나는 익지도 않은 핫도그 4개를 허걱지겁 먹고 급체를 했다. 하얗게 질려버린 나를 보다 못한 엄마가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고 뾰족한 부분으로 내 엄지손가락을 무지하게 찔러댔다. 끝내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고 그날 본 해가 진 바닷빛도 검붉게만 보였다. 피 비린내와 바다의 짠내가 겹쳐진 그날의 기다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네비도 없던 시절, 저녁이 되어서야 길을 헤매던 아빠가 우리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셨다. 어린 시절 부모를 기다리는 마음은 설렘보다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었다. 그래도 무탈하게 돌아오겠노라 자식과 한 약속을 끝내 지키셨음에 나는 안도했다. 아마 아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일상의 흔한 약속; 갔다 올게, 다녀올게]
유쾌한 가족 시트콤 "영쉘든" 마지막 시즌 7을 보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가족 쉘든네는 아빠의 이직으로 이사를 준비하였고 떠나기 전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느 아침처럼 출근하는 아빠는 "다녀올게." 보통의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날 아빠가 심장마비로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장면에서 나는 무방비로 울음이 터졌다.
우리도 매일 아침마다 등교를 하며, 출근을 하며 현관문 앞에서 "갔다 올게, 다녀올게."라는 약속을 했었다. 또 타지에 가거나 여행을 갔어도 집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문을 나섰다. 어김없이 약속대로 집에 돌아왔고, 안정된 귀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았다.
갔다 오겠다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다녀온다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돌아오겠다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것 또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단면인 것을 알면서도 영상에서 본 그런 일이 나에게만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며칠 동안 애를 태웠다. 걱정을 한다고 그게 막아지나.
나는 가족끼리한 그 어떠한 약속보다 소중하게 꼭 지키고 싶은 약속이 생겼다. "돌아올게, 다녀올게, 갔다 올게. " 이렇게 약속을 하고 그들 곁에 돌아올지, 못 돌아올지는 신만이 아시겠지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편과 아이에게 꼭 지켜주고 싶다.
엄마를 기다리다 낯선 이의 전화기를 빌려 내게 연락을 한 너에게......
약속 시간보다 늦어진 기다림이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을고, 달려오는 엄마를 보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덩치만 커버린 너. 엄마가 그 마음을 알면서도 엄마를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낯선 동네에서 낯선 이에게 섣불리 다가간 것을 뭐라고 나무랐지. 만약에를 붙이니 너무나 무서웠단 말이야. 네게도 경각심이 생기고, 선한 이웃이 아직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엄마의 소망은 어느 날, 네가 화가 나 아무 말 없이 현관문을 쾅하고 닫고 나가버리고 싶어도, 오늘 우리가 한 그 약속은 꼭 지키자는 것이다.
"다녀올게, 갔다 올게."
오늘도 현관문을 나서는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 가족, 어디를 갔다가도 집에 돌아오게 해 주세요. 잘 다녀오게 해 주세요.
이 글을 읽는 모두의 귀가를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의 온전한 소망을 담아서
간절히 돋을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