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온전한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
"이번 글도 좀 엉망인가? 며칠 잠도 못 자면서 쓰긴 했는데...... 다른 작가님들 글에 비해 소재도, 표현도, 깊이도, 조회수도, 라이킷도 음... 자신 없어. 내 인생도 언제 한번 반짝 빛나서 주목받은 적이 없었긴 해."
타인에게 내 글을 처음 공개할 무렵, 나는 애써 쓴 글과 인생을 꽁꽁 묶어 한탄하는 감정 개복치였다. 그런 내 손에 밥 숟가락을 쥐어주던 남편은 점점 좋아질 거라고 나를 다독여 주었다. 일찍이 끝난 식사 자리였지만 식탁 앞에서 글에 대한 우리 둘의 조용한 대화는 길어져 갔다. 거실 먼발치에서 놀고 있던 아들이
"엄마! 엄마 글이 덜 익어서 그런 게 아닐까?"
......
덜. 익. 었. 다.
아들의 현답을 듣고 손에 쥔 밥 숟가락을 다시 내려놓았다. 고작 글 몇 편을 쓰고서는 푹 익은 척, 노력을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을 태연하게 숨기다가 아들에게 그것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 어디든 숨고 싶었다.
엄마의 부족한 글이 그래도 엉망이 아니라 덜 익었다고 말해주는 너.
그때 네 말로 인해 엄마는 "덜 익어서 그래적 사고"를 갖기 시작했단다.
학령기 아들과 보드게임을 자주 한다. 화살표를 돌려 나오는 다양한 크기의 피자 조각을 모아 피자 한판을 먼저 완성하는 사람이 이기는 보드게임을 할 때였다. 모인 조각들 사이로 빈 공간이 생기거나, 한판이 넘어가면 그 피자는 망한 것이다라고 게임 설명서는 표현했다.
한판을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해 "에휴, 난 망했어! "라고 표현하던 남편에게, 나는 어린이의 바른 언어생활을 의식해 "우리 망했다 말고 덜 익었다고 말하기!"라고 새로운 규칙을 말했다. 그것을 귀담아듣던 아들이 흡족하지 못한 모든 상황에 '덜 익었다'를 갖다 붙였다.
내 글이 거기에 걸려들었다.
덜 익어서 그래.
잔실수나 잘못된 선택 끝에 마음으로나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던 "망했다"라는 말을 의식해서 쓰지 않았다. 아들처럼 "덜 익었다"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공들이다 허물어져버린 도미노를 다시 세우듯이 실패한 일은 다시 시작했고, 간혹 퇴근 후 촉박한 시간에 음식을 해서 간이 망한 경우도 있었지만, 손이 덜 익어서 그렇군 하며 급히 라면을 끓여 가족을 먹이는 여유도 가졌다.
더불어 그날 이후 때때로 견디기 힘든 동반자였던 나 자신을 하나의 덜 익은 존재라고 생각하니, 나에게 내가 참지 못할 것도 미워할 것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아직도 한 번씩 잠투정을 하거나 황소고집을 피우는 아들도 덜 익어서 그래, 신혼 때 내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주지 않던 T성향 남편도 그때는 덜 익어서 그래, 선생님의 그림자를 밟던 내 제자들도 덜 익어서 그래,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스쳐간 인연들도 덜 익어서 그래.
가족을 비롯한 타인의 실수나 서로에게 준 상처들을 떠올렸을 때 우리가 그때 덜 익어서 그랬을 거야 하고 생각하니 양파 껍질 한 겹 벗겨진 듯 마음이 조금은 투명해졌다.
내 인생도 글도 아직 덜 익어서 서툴고, 참 맛과 향기를 못 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내 나이 마흔을 넘겼으니 내면도 익어가야 할 텐데, 글도 많이 써서 익어가야 할 텐데...... 만병통치 약인 시간에 의지해보면 이상이 실현될까? 모든 게 덜 익어서 그렇다는 여유로운 태도는 좋지만, 그래서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인생도 글도 더 잘 익어가기 위해 좁은 틈 따뜻한 햇살 쪽으로 시선과 방향을 놓아본다.
엄마 글이 덜 익었다는 너에게.
네 말처럼 덜 익은 것은 망하거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은은한 햇살 속에 시간을 먹으며 익어가는 것. 반짝 빛나는 존재들도 익어가는 과정들 속에서 숱한 노력을 했을 뿐만 아니라 따뜻한 시선을 받았을 것이니, 덜 익은 우리도 서로에게 지금처럼 따뜻한 격려와 노력에 대한 지지를 보내주자.
아까 급히 끓인 라면 면발이 덜. 익. 었. 다. 는
두 남자. 오늘은 그냥 조용히 먹도록 하자.
내가 라면 면발처럼 덜 익어서 그래.
오늘의 온전한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