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유산을 찾아서 단디 돋을새김
우리 집에는 책식 공룡이 산다. 스마트폰이라는 신문물이 도입되기 전인 세상, 그 속에 주로 책식을 하는 성장기 - 만 8세 어린 공룡이 여기도 아직 살아있다. 닌텐도 게임을 달달한 간식 먹듯 가끔 하지만 아직까지 종이책을 주식으로 삼키는 새삼 귀한 책식 공룡이 산다.
그 녀석이 이렇게 물었다.
"엄마! 나 스마트폰 언제 사줄 거야, 엄마는 언제 일하러 가?"
'엄마가 일하러 가게 되면 연락이 닿아야 되니까 그때 사줄게!'하고 미루고 미룬 일이 점점 한계가 다가왔다. 그래도 아들이 아직은 스마트폰보다 엄마가 더 좋은가 보다. 엄마가 올해까지는 일하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가진 스마트폰을 자기는 언제 가질 수 있냐고 묻는 너에게 ......
언제 변할지 모르는 네 마음을, 거기에 반응하는 나를 글로 돋을 새겨야만 한다.
아들이 해리포터 시리즈 7권, 전권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던 날이었다. 해리의 마법 세계가 끝났음을 부정하며, 삶의 낙이었던 신비한 세계가 금세 사라져 안타깝다고 눈물을 흘리는 우리 집 책식 공룡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천금만금을 얻은 듯 부푼 가슴이 기쁨의 파도에 밀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나는 유독 아들의 책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찍어 남긴다. 책을 읽는 아이는 보배롭다. 책을 읽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고, 집에 친구들이 놀러 와서 신나게 뛰어놀다가도 휴식이 필요하면 책을 꺼내 들고 읽는 아들에게 책이라는 친구가 있어 나는 흡족하다. 문해력 신장 따위는 모르겠고 아들이 그 친구랑 평생지기로 살았으면 하는 게 엄마 마음이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댁에 가면 퇴직하신 아버님이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계신다. 우리 집에서는 남편이 아버님과 같은 게임을 공유하는, 게임에 허용적이고 자유로운 집안 분위기에서 곧 아들은 게임의 세계에 자연스레 입문할 것인데,
삼대가 컴퓨터 3대를 나란히 놓고 게임하는 그날을 꿈꾸는 남편과 그에게 세뇌당해 그때를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나. 그래, 삼대가 소통하는 컴퓨터 게임은 일단 오케이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생각하면 내 미간이 좀 찌푸려진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순간, 책식 공룡은 나는 닿을 수 없는 자신만의 앱 세계에 들어가겠지. 간간히 향수처럼 책은 들겠지만 지금처럼 이것저것 꺼내 읽지 않고 그 속에서 누릴 재미를 잃어버리고 다른 자극적인 재미에 빠질 것이다. 우리 집도 조만간 폰 게임 좀 그만하라며, 더 하고 싶다며 울고불고 다투는 소리로 시끄러울 테다.
지금은 읽은 책 내용이나 해리포터에 나오는 주문, 인물들에 대해 나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지만, 점점 나만 빼놓고 게임에 나오는 세계관, 인물, 아이템을 할아버지와 아빠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아들을 생각하니 미리 속이 좀 상한다.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 친구들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을 동냥질하듯 딱 붙어 쳐다보고 있다. 엄마도 안다. 앞으로 펼쳐질 네 세상에서는 생존 소통을 위해서라도 스마트폰 게임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책식 공룡이 곁에 있는 지금을 오래 붙잡고 싶은 나는, 네가 빨리 크는 게 아쉬운 마음일까? 내가 모르는 세계로부터 너를 지키고 싶은 것일까? 네 세계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까 불안한 것일까?
네게 새 친구 스마트폰이 생기는 순간 책 읽는 사진들이 네 역사의 유물로 남지는 않을까, 우리 집 귀한 책식 공룡이 빨리 멸종하진 않을까 벌써 한걱정이다.
어차피 AI와 함께 살아야 할 세상, 뭐든 피한다고 피할 수도 없다. 너를 이해하기 위해 네 새로운 세계로 함께 가야 한다. 나도 게임의 세계로 다가가 보기로 미리 마음은 먹었다.
이런 비장한 나를 보며 네 아빠가 옆에서 웃었다.
오늘의 유산을 찾아서
단디 돋을새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