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를 들고 온 너에게

오늘의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

by 이을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 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방학을 맞았다. 신발 한 짝, 실내화 한 켤레는 잃어버렸지만 무탈하게 매일 집을 찾아 돌아온 아들이 기특했다. 방학식 날 하교 후 바닥에 던져진 아들의 책가방 속을 정리하려고 책가방을 열었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한 학기 동안 공부한 아들의 교과서였다. 1학년 글씨는 삐뚤빼뚤 서툴 것이고, 생각 쓰기에는 떤 생각을 썼을고? 아들의 수업 시간이 무척 궁금했다. 책가방에서 국어 교과서를 꺼내 들었다.


교과서 표지의 '국어'가 선 굵은 '굶어'가 되다.

[ 굶어 ]

흠, 우리 아들이 겹받침을 아는구나......

펼쳐본 과서 속엔 지루한 수업 시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만 기다렸을 들의 모습이 엿보이는 낙서가 구석구석에 가득했다.


'굶어'를 써 온 아들을 모른 채 눈 감아줘야 하나 고민 때, 여고시절의 과서가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참 좋았다. 같은 반이 된 지 한 학기가 지난 후에야 그 친구와 내 유머코드가 잘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굴러가는 낙엽에도 소란스레 웃었, 묵도 장난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쉬는 시간, 그 친구의 국어 교과서 첫 표지 뒷장에 연필로 내 마음을 게 몇 자 끄적였다.

"네가 참 좋아. 우리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꼭 같이 가자. 친구야 파이팅!"이라고.

내심 내 교과서에 적힐 반가운 답장을 기다렸건만, 낙서를 본 친구의 인상이 구겨지고 있었다. 우개로 얼른 구 교과서에 쓴 내 마음을 지워 버렸다. 그날 이후 그 친구가 내게 냉랭한 기운을 뿜었다.


며칠 뒤, 냉기를 깨고자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뭘 잘못한 것이 있는지 하고. "아니야." 라며 친구는 평소처럼 팔짱을 껴주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책을 무척 사랑하는 친구였다. 학교 도서관 도우미로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에 가있었고, 항상 책을 읽고 있던 아이였다.


그에게 교과서에 편지 낙서를 남긴 나는 책에 대한 모독자, 무례를 범한 친구였던 것이다. 그 친구에게 '나도 괜찮으니 너도 괜찮겠지'하는 짧은 생각으로 행했던 내 서툰 행동이 참 미안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교과서에다가 필기 외에는 낙서를 하지 않았다. 서점에서 내가 읽을 책을 사고서도 밑줄 하나 긋는 것도 머뭇거리게 되었다. 훗날 가르치던 학생들의 노트에다가도 'good'이라든지 '참 잘했어요'도 잘 쓰지 않았다.



포스트잇이 있는 이유와 타인과 나 사이에 경계가 있음을 그때 확실히 체감했다. 장하면서 각 사람마다 넘지 말아야 할, 각기 다른 선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그 선의 경계가 흐릿해서, "괜찮지? 상관없을 것 같아서." 하며 그것을 쉽게 허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도, 그만큼 상처도 남는다 것도 말이다.


'우리'라고 불리는 울타리 안의 관계들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선을 허락받은 양 마음대로 넘나들 때가 있다. 히 가족이 그랬다. 것은 더 가까운 만큼 채기를 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사는 동안, 자주 만나는 동안 서로 부딪히면서 선명해지는 선들을 하나씩 가늠해 갔다. 그리고 선을 넘지 않으려는 노력들을 랜 기간 었다. 지금 가끔 그 선들이 휘청이지만 허물어지지 않게 애쓰고 있다. 그 시간과 애씀이 지금의 견고한 가족 울타리를 세울 수 있 했을지도 모른다.




굶긴 적이 없건만, 신박한 '굶어' 교과서를 들고 온 너에게......


엄마가 이건 콕 짚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교과서도 책이다! 네가 사랑하는 책과 같다.

네 교과서는 네 책이라서 국어가 '굶어'가 된 것을 엄마가 무어라 하지는 않을게. 다만 을 사랑하는 아이니 교과서도 소중히 다룰 것! 또 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더 집중해 볼 것!


둘째, "나는 괜찮으니 너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버려라. 아무리 편하고 잘 맞는 사람이라도 섣불리 네 마음대로 판단해서 행동하면 안 된다. 네가 중요시하는 선을 무례함으로 허무는 자에게는 경계를 세워라. 울러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 있는 가족들에게, 선명해진 선을 넘지 않게 별히 주의하자.



중국집로 외식을 하러 갔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남편이 내게 묻지도 않고 먹던 짬뽕을 시켜놓았다.

오늘 나는 간.. 히. 짜. 장. 면. 을 원했......

매일 달라지는 내 식욕 선을 그가 어찌 알았겠는가, 그에게 선 넘은 전과가 많기에 오늘은 그냥 뿐히 넘어가기로 했다.




오늘의 재미를 찾아서
재밌게 돋을새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