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돌아오지 않는 너에게

오늘의 성장을 찾아서 올곧게 돋을새김

by 이을

금요일 밤 9시였다. 른 저녁밥을 먹고 집을 나선 9살 아들이 그 시간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들을 찾으러 외투도 걸치지 않고 슬리퍼를 대충 신고서 장하게 현관문을 나섰다. 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3층 버튼을 눌렀다.


같은 아파트 3층 친구 집에서 아들은 '여자 사람 친구' 옆에 바짝 어 앉아 클레이를 갖고 놀고 있었다. 에 가자하면 제든 어디서든 곧장 일어나 바로 나를 따라나섰던 녀석이 그날은 처음으로 엄마를 따라가기가 싫다고 했다. 돌이 녀석이 집에 안 간다.


"일 주말인데 친구랑 더 놀다가 가면 안돼?"


"늦어서 안돼, 친구집에 민폐야."라고 했지만 친구 엄마는금인데 하며 자애로운 미소로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는 전히 놀다가 밤 10시에 집에 돌아오겠다는 아들의 약속을 받고 혼자 그 집 문을 나섰다.깜깜한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구멍 뚫린 슬리퍼를 신은 맨발이 시렸. 그 집에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했건만, 편인 꽃을 찾아오지 못고 돌아온 내 빈손 렸다.


엄마가 된 후, 처음 느끼는 이 빈손의 느낌은 뭘까? 거기에 반응하는 나를 탐구하러 간다.




집에 혼자 돌아온 나를 보며 남편은 아들 뺐꼈네 하며 웃었다. 편이 3층 덕분에 이 오랜만에 오붓이 TV나 보자며 리모컨을 찾는데, 나는 아이를 할머니댁에 보낼 때처럼 마냥 자유롭나 홀가분하지 않았다. 내 속에서 이는 일찍이 빠져나 저만치 컸는데, 이름 모를 실체가 쑥 하고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TV는 안 보이고 시계 눈길이 갔다.


3층에 사는 자아이는 아들과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다니고 있다. 둘 다 형제 없는 외동이라 어릴 때부터 로의 을 왕래하며 매처럼 잘 어울려 놀았데, 투닥거리다가도 금세 다시 붙어 희죽 웃다. 또 일 아침 1층에서 만나는 굣길 동무이기도 하다.


아침에도 함께 등교해 놓고는 늦은 밤까지 둘이 무슨 재미를 보았을고? 밤 10시가 되자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하던 드게임이 방금 끝이 났는데 녀석들이 헤어지기 아쉬워해서 파자마 파티처럼 더 놀리다가 아들을 올려 보내겠노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밤도 너무 늦었고 어린이가 잠도 일찍 자야 하는데, 또 원래 약속도 잘 지키던 데 앞으로 약속을 어기면 어쩔 거냐며 남편에게 툴툴거렸다. 시 찾으러 가야겠다고 는 나를 붙잡은 남편은 아들이 이런 날도 있지 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걱정보다 실은 섭섭함이 내 안에 불쑥 솟아올랐다.가 점점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고, 엄마와 분리되는 것이 아들의 독립을 위한 통과의례이자 발달과업 것을 알면서도,

여자 아이 옆에 딱 붙어 앉아 그 친구를 웃기려고 땀이 날 정도로 까부는 모습을 보면서, 구들과 노느라 나랑은 안놀아 줄 단물 빠져 싱거워질 내 미래가 그려졌다.


나도 친구가 세상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집이 멀리 이사를 서 전학을 가야 했었다. 영원히 같이 가야할 친구들과 헤어지기가 죽도록 싫 전학을 가지 않겠노라 고집을 부렸. 래서 학교를 위해 홀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의 통학 거리를 래했는데, 그 일을 졸업 때까지 2년간 했다. 만큼 친구들은 내 삶의 이유이자 큰 위로였다.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때 허물없이 친하게 놀던 남자 친구들이 변성기가 온 남중생이 되자 길에서 만나면 아는 체하지 않았다. 춘기가 오면서 성 친구들이 더 편하고 좋았나보다. 시절을 떠올리면 부모님과의 추억보다 또래 친구와의 추억이 더 오래 남았다.


아들은 점점 부모의 품에서보다 친구들과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고, 부모의 영향보다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또 아들은 잦은 연애도 할 것이고, 훗날 반려자도 만날 것이다. 오늘 내 속에서 빠져나간 것은 무엇이었을까?그것은 신체 못지 않게 마음도 훌쩍 성장한 아들이었다.




자정이 되기 전, 손에 빨간 클레이 작품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온 녀석이 내 얼굴빛을 살폈다. 엄마를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던 탓일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로 양치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더니 내 옆에 와서 누웠다. "엄마 늦어서 미안해. 리까지 하고 오느라. 실컷 놀게 해 줘서 고마워." 하고 아들이 스르륵 잠 들었다.


장에 필요한 놀이를 몰아서 하고, 인생의 절반보다 더 오래 쌓은 우정을 소중히 지켜가며, 집으로 돌아와 불금을 불태운 전사처럼 자는 아들이 제 몫을 하고 성장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성장하며 부모로부터 씩씩하게 독립할 너, 젠가 인이 되어 은 밤인데도 새 둥지로 가 부모의 집에 돌아오지 않을 너. 구멍 난 슬리퍼 속 맨발이나 빈손의 시림이 아니라 너와의 추억을 꽉꽉 가득 담은 완성된 관계로, 네 온전한 독립 만세를 같이 즐거이 외쳐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넌 모를 거다.

엄마 중학교 때 좋아 죽고 못살던 친구들 중 만 지금 내 곁에 남아있다는 것과 도 지금허물없이 지내는 여자 친구들과 중학교에 가면 서로 데면데면해질 것을.

또 내가 결혼식장에 가면 벌써부터 신부 측 어머니보다 신랑 측 어머니 쪽에 눈과 마음이 자연스레 고, 모습을 보며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진다는 것을.


내 결혼식날 신랑 측에 계셨던 시어머니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그때 저런 울상이셨던가?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그날 나만 보고 있느라 어머니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 아들도 아마 그럴 것 같다.



오늘의 성장을 찾아서
올곧게 돋을새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