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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린 이수민 Apr 16. 2020

베토벤과 천재의 3가지 조건

베토벤의 유년기-청년기

천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3가지 조건


한 인간이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재능을 꾸준히 갈고닦아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러니까 소위 ‘천재’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400년 클래식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등장했다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단단한 삶과 음악을 잘게 부수어 소화 시키기 쉽도록 대중에게 전달하는 직업을 가진 저는 ‘천재가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종종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로는 아이의 타고난 재능, 두 번째로는 부모의 든든한 경제적 지원과 정신적 지지, 세 번째로는 아이가 잠재력을 발휘하게끔 이끌어주는 훌륭한 스승까지. 더 많은 조건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천재들에게서 이 세가지 조건이 공통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타고난 재능 + 부모의 지원과 지지 + 좋은 선생님 = 천재 탄생의 조건









예술가의 삶과 작품은 같이 or 따로 봐야 할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드는 것!





오늘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어제의 내가 익힌 것들입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제의 내가 연습 혹은 단련을 했기 때문이고요. 그렇게 어제의 내가 모여 오늘의 내가 되는 것이죠.



음악계 거장들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유년, 청년, 말년시절에 어떤 사람들을 만나 영감을 주고 받았고, 어떤 색의 사랑을 했고, 어떤 큰 사건들을 겪었는지 알아야 그의 삶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베토벤과 함께 고전주의를 이루는 양대 산맥이 있죠. 바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입니다. 베토벤 스스로도 모차르트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하고 다녔고요. 그렇기에 베토벤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짙게 묻어납니다. 아래의 링크 둘을 비교해서 들어보세요.



모차르트의 영향이 짙게 담긴 베토벤 <현악사중주 No.1 Op.18 > https://youtu.be/de-NLJ0doao?t=2 

모차르트의 <현악사중주 17번 ‘사냥’> https://youtu.be/FIUPPOToij4?t=70           








3대 음악가 집안


베토벤의 집안은 3대가 음악가였습니다. 존경받는 궁정악장이자 베토벤의 롤모델이었던 할아버지, 궁정 테너였던 아버지, 피아노 즉흥연주와 작곡에 능했던 우리가 아는 그 베토벤까지.


베토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정음악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이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지 않는 것이라고, 평민 신분에서 귀족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요즘으로 치면 정년이 보장되어 있고 연금이 나오는 공무원이 되리라 일찌감치 마음 먹었던 것이죠.


하지만 베토벤은 궁정음악가의 자리를 평생 가질 수 없었습니다. 상황적으로 타이밍이 안좋기도 했고, 정치적으로도 격변기였던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기 때문이죠.



궁정음악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린 베토벤




처음에는 궁정음악가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 깊이 상심하고 자격지심을 느꼈던 베토벤이었습니다. 하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전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적 판도가 바뀌면서 베토벤은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왕족이나 귀족들의 하인으로 사는 삶이 아닌 주체적으로 사는 삶, 자신의 감정과 철학을 음악 속에 녹여내는 프리랜서 작곡가의 삶을 살기로요. 현시대의 사람들이 가벼운 박수갈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닌 후대 사람들의 정신적 유산을 위해 작곡하기로요. 


새로운 결심을 한 베토벤은 그때부터 자신의 음악 속에 세계시민주의와 평등주의를 녹여내게 됩니다. 이러한 정신을 담은 대표작이 <심포니 9번 합창>입니다.      


시대를 읽고 미래를 계획했던 베토벤은 독일의 시골인 본에서 당시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삽니다. 20대에 이미 피아노 연주로 이름을 널리 퍼트린 그는 그를 좋아하는 귀족들과 어울리며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마디로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자마자 스타가 된 것이죠.


그는 귀족들의 살롱음악회에 초대받아서는 자신이 내킬 때에만 피아노를 쳤습니다. 억지로 피아노 연주를 시킬 때에는 막말을 하며 그 자리를 떴다고 하네요. 귀족들은 그에게 넉넉한 연금과 최신 악기 선물, 심지어 살 곳까지 제공했습니다. 그가 작곡을 하면 헌정 받으려고 물밑작업을 펼쳤고요.

  


귀족들의 살롱음악회









‘제 2의 모차르트’를 향한 비뚤어진 아버지의 욕망


베토벤이 어렸을 적 모차르트는 이미 전 유럽에 이름을 알린 신동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베토벤보다 고작 14살 많았으나 6살 때 첫 연주회를 여는 등 일찌감치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모차르트가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순회연주로 돈을 버는 것을 부러워했던 베토벤의 아버지.


자신의 아들에게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혹독한 교육을 시작합니다. 베토벤 아버지의 목표는 오로지 ‘제 2의 모차르트’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넘치는 창의성을 가졌던 베토벤이 악보대로 치지 않고 작곡을 시도하곤 하면 매섭게 혼을 냈습니다.


어린 베토벤을 굶겨가며 하루에 몇 시간 이상 연습하도록 강요하거나, 학교 다닐 시간에 연습을 해야 한다며 11세 이후로는 학교를 못 다니게 하기도 했죠. 이 때문에 베토벤은 평생 철자, 셈에 약했다고 합니다. 배움의 부족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어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독서를 통해 채웠던 베토벤



베토벤은 후에 자신의 출생신고 서류를 여러 번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토록 자신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가 분명 친부가 아닌 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또 자신의 아들이 ‘신동’ 소리를 듣게 하려고 2살을 낮춰 사람들에게 소개했던 아버지 때문에 베토벤은 중년이 될 때까지 정확한 탄생연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베토벤의 아버지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으니... 그는 알콜 중독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부업으로 운영하던 와인농장을 물려받는데 그치지 않고 알콜의 달콤함에 깊이 빠져버린 것이죠. 알콜 중독이 심해지자 직장에서 잘리는 등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술에 취해 아이들을 체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와중에 베토벤의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하자 베토벤은 16세의 나이로 어린 두 동생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 때부터 느꼈던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후에 수입이 넉넉해진 뒤에도 항상 돈 걱정을 달고 살았다고 합니다.       



알콜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평생 돈에 민감했던 베토벤

    





“나는 하이든에게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고향 본에서 알게 된 발트슈타인 백작은 당시 최고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던 하이든에게 자신이 발견한 보석이자 고향의 자랑거리인 베토벤을 소개 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베토벤 역시 추천장을 써주고, 빈에서의 유학비용을 후원해주는 백작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게다가 유명한 음악가에게 배웠다는 경력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두고두고 득이 될 참이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궁정음악가가 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죠. 


빈으로 건너간 베토벤은 하이든에게 오랜 시간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이 추구하던 음악과 다른 음악관을 가진 하이든에게 실망한 그는 스승을 넘어서겠다는 야망을 키웁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하이든과 괴짜 소리를 들었던 베토벤. 


둘은 성향이 무척 달랐고, 38년의 나이 차가 났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당시 빈을 쥐락펴락하던 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죠. 하이든의 후원 귀족 명단과 베토벤의 명단이 거의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파파 하이든과 성격이 불 같았던 청년 베토벤




현악사중주(String Quartet)는 바이올린 2대, 비올라, 첼로로 이루어진 구성입니다. 하이든이 만들어 빈 예술계에 널리 유행시킨 장르로, 68곡이나 작곡했죠. 현악사중주는 대규모 인원이 모인 오케스트라보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기본적으로 악기를 몇 개 다룰 줄 알았던 귀족들의 여흥을 위해 딱 맞는 장르였습니다.


 하이든의 명성을 뛰어넘겠다는 결심을 한 패기 넘치던 베토벤은 현악사중주 장르 작곡에 몰두합니다. 현악사중주의 아버지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스승에게 공식적으로 경쟁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렇게 탄생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는 총 16곡으로 그 중  7번 <라주모프스키>, 11번 <세리오소> 등이 유명합니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1번 <세리오소> https://youtu.be/KwxYhUO9Gq4?t=11 

베토벤 현악사중주 7번 Op.59-1 <라주모프스키> https://youtu.be/f7vleQm1mg4?t=21      

베토벤이 스승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견주었던 자신의 작품 <프로메테우스의 창조>  https://youtu.be/zEOVeGWCmD0?t=24      




바이올린2, 비올라, 첼로로 구성 된 현악사중주





후에 베토벤은 하이든을 이렇게 추억합니다.



나는 그에게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너무 바쁜 스승이었다.  



    







모차르트와의 짧고 굵은 만남


베토벤이 17세, 모차르트가 31세 때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모차르트의 집에서 둘은 딱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이름도 없는 십대 소년 베토벤의 손에는 쾰른의 공작인 막시밀리안 대제로부터의 추천장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추천장에는 베토벤이 쾰른 궁정 오르가니스트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 작곡가며 즉흥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에 앉은 베토벤의 첫인상은 강렬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모차르트가 심드렁해 하자, 베토벤은 즉흥연주를 선보였습니다. 그제서야 모차르트는 흥분하여 “이 소년을 기억하게. 세상을 깜짝 놀래킬거야”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경쟁자로 알려졌던 살리에리에게도 작곡을 배웠고, 이 밖에도 여러 선생님들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악보를 출판할 때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도 누구의 제자였다고 내세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베토벤에게는 고집불통, 배은망덕한 제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죠.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자신의 실력에 자신 있었던 청년 베토벤






다음 편에서는 20대에 전성기를 맞은 베토벤의 활약상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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