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화되는 고통

by 심연온


“치료 기간이 너무 길어지니까 답답하고 불안하더라구요. 회진 시간에 하소연하다가 그만 울어버렸네요. 그런데, 제가 우울증인가요?”


암 병동에서 만난 환자의 물음이었다.
그녀는 혈액암으로 긴 항암치료와 이식을 거쳤고, 지금은 면역력 저하로 격리 병동에 있었다. 치료가 이어질수록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과 무력감이 쌓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비슷한 의뢰를 자주 받는다.


“우울증이 아닌지 평가해 달라.”
“정서적 지지를 부탁한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가 절망과 불안을 느끼는 건 지극히 타당한 인간의 경험이다. 그런데 그 고통조차 정신건강의학과로 의뢰된다. 마치 낯선 부서로 외주화된 고통처럼.

물론, 그 가운데 어떤 이는 실제로 죽음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라면 전문적 치료와 개입이 절실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오래 함께한 주치의의 따뜻한 한마디, 간호사의 진심 어린 손길이 더 큰 힘이 되곤 한다.






문제는, 고통이 외주화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철저히 개인의 문제가 된다. “병명”과 “증상”이라는 언어로 환원될 때,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연결과 연대의 가능성은 닫혀버린다. 마치 사회 전체가 나눠야 할 몫을 한 사람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정신과 의사가 “당신은 우울증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고통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인간이라면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몫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견디고 지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절망만이 아니라 연대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날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괜히 주치의 선생님을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래도 선생님을 만나서 좋았어요. 제가 우울증이 아니라고 하시니까요.”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우울증이 아니라고 안도하기 전에, 우리가 함께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회,
그런 사회가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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