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요.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비웃는 듯한 그런 시선이 무서워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타인의 시선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외출이 어렵다고 하는 환자들에게 나는 때때로 되묻곤 한다.
“오늘 거리를 지나며 누군가의 얼굴이나 표정을 기억하시나요? 옷차림은요? 지하철에서 스쳐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으세요?”
대부분은 대답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심지어 출근길에 감사하다고, 수고하신다고 눈을 맞추어가며 인사를 나눈 커피 가게 직원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일인칭 시점에만 갇혀 있을 때, 세상은 나를 향한 시선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전지적 시점으로 잠시 올라서면, 사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느라 바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이고, 타인도 자기 자신에게 그러하다. 다만, 때로는 자기 자신을 더 큰 맥락 속에 놓아두는 일이 필요하다. 일인칭의 감옥을 벗어나야만, 마음의 안녕이 찾아올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건강은 흔히 ‘자존감’이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태도다. 물론 중요한 덕목이지만, 자존감을 지나치게 강조할수록 우리는 고립된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단단히 붙드는 사회 속에서, 연대의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든다.
나는 환자들을 보며 이런 질문을 떠올린다.
“혹시 자존감이 아니라, 연존감이 필요한 건 아닐까?”
연존감은 나를 더 큰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감각이다. 내가 연결된 관계망 속에 있다는 자각, 내가 다른 존재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감수성. 이 감각을 가질 때 우리는 더 지혜롭고, 더 평화로워질 수 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은 종종 부족한 자존감이 아니라, 상실된 연존감이다.
이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서로와 연결된 존재로서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