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가두는 알고리즘

내가 욕망하는 것은 과연 오롯이 나의 것인가?

by 심연온


누가 러닝을 돈이 들지 않는 운동이라고 했던가.


요즘 나는 러닝용 하프 레깅스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로 며칠째 고민하고 있다.

집에 있는 아무 반바지를 입어도 사실 달리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왜 굳이 사고 싶은 걸까.


언젠가 탄탄한 다리 근육을 드러낸 채 달리는 나를 상상한다.

그 상상은 곧 욕망이 된다.

그런 내가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욕망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휴대폰을 열면 어김없이 내가 보았던, 혹은 좋아할 만한 러닝복이 튀어나온다.


알고리즘은 내 욕망이 끊기지 않도록 조용히 이어 붙인다.





고백하건대 요즘 진료실에서는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환자들을 자주 만난다.

이전에는 과도한 소비를 보이면 조증 상태를 의심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심한 우울 상태에서도 쇼핑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쓸데없이 줄무늬 티셔츠를 계속 사게 돼요.”
“집에 다육이가 가득해요. 틈만 나면 또 주문을 해요.”


사실 하나하나는 비싸지 않다. 그러나 수십 개가 쌓이면 어느새 큰 금액이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내 옷장과 신발장이 떠올랐다.

러닝화와 러닝복으로 가득 찬 공간.


그들과 나의 차이는
어쩌면 단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닌가.





기후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모두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소비자다.

그들과 나를 가르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어쩌면 경제적 여유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개인의 의지 문제일까.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은 인간의 욕망은 결코 순수하게 “나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타자”는 누구일까.


타인의 시선,
사회적 기준,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알고리즘.


알고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가르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도록 설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담배가 폐를 망가뜨리고
알코올과 마약이 정신을 손상시키듯이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알고리즘은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결과를 우리는 개인의 문제로 해석한다.


의지박약,
충동성,
혹은 정신질환.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질문을 잘못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이런 방식으로 욕망하도록 만들어졌는가.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따라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욕망조차도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욕망조차도
타자와,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

치료와 약을 권하기 전에,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의 욕망은 과연 어디서 왔는 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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