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엄마가 어릴 때부터 시키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섭게 야단치곤 했어요. 그럴 때면 저는 얼어붙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왔어요.”
어느 순간부터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더 이상 정신건강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뉴스와 SNS,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일상 언어처럼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스스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며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의학적으로 트라우마는 개인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 담론에서는 심리적 타격감을 준 경험이라면 비교적 쉽게 ‘트라우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확장된 사용이 나타난다. 전통적인 의미의 외상을 Big Trauma라고 부른다면,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조롱이나 멸시, 모멸감 같은 경험을 Small Trauma, 혹은 Small T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Small T가 반복되고 누적되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누적된 Small T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 불안, 분노 같은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워하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이러한 Small T 혹은 미세공격적 언동을 경험한 뒤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가해자’로, 그리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법적 소송을 준비하며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트라우마로 고통받았는지에 대한 증거를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여러 병원과 트라우마 전문센터를 오가며 다양한 치료를 받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삶이 지속되다 보면, 한 사람의 정체성이 ‘피해자’라는 위치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생긴다.
세상 속 인간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만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계 갈등은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단단히 규정하는 순간, 그 사람은 관계 속에서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잃게 되기도 한다.
이들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는 관계 속에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로 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자’라는 위치가 정체성이 되어버리면, 역설적으로 주체성을 회복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치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개입 역시 이러한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점점 더 자신의 삶을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의 이야기’로만 해석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트라우마’라는 개념의 외연이 이렇게까지 확장되는 것이 과연 항상 바람직한 일일까.
어쩌면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개개인을 대상으로 한 치료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Small T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환경 자체를 줄이는 것,
즉 사람의 존엄을 지켜주는 문화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말이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취약함과 상처를 모두 알 수 없다.
그래서 서로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보이지 않는 상처를 고려하며 관계를 맺는 태도. 그것이 바로 트라우마에 민감한 사회(trauma-sensitive society)의 출발점일 것이다.
트라우마에 민감한 사회란, 사람들의 취약함을 전제로 관계를 맺는 사회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상처와 경험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취약함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도록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사회.
동시에 누군가의 상처가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고정되지 않도록,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다시 움직이고 회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사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도록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영원한 피해자로 가두지 않는 사회다. 이러한 태도가 사회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피해자’라는 이름으로만 설명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상처는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곧 한 사람의 존재 전체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상처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트라우마에 민감한 사회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상처 입은 존재가 아니라 다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