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 연결의 감각 회복하기

by 심연온

출근길 지하철 안이 빽빽했다.

처음엔 출입문 가까이에 섰지만, 역을 지나며 사람들에게 떠밀려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몸은 점점 조여오고,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초여름의 날씨에 누군가의 팔과 가슴, 등이 내 몸에 닿아 열기를 내뿜었다.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이럴 땐 그냥 가만히 이어폰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음악에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꽉꽉 찬 전동차 안에 어떤 남자가 급히 뛰어오더니 비좁은 공간을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러자 앞에 있는 사람의 팔이 내 머리를 퍽 쳤다. 밀려오는 통증과 미묘한 불쾌감으로 나도 모르게 신음했다.


그 순간, 그 때 하필 전동차 안에 뛰어든 남자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쏘아 보았다.

문득, 지금 내 삶의 밀려오는 모든 고통이 그 남자 때문인 것만 같았다.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야만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면서, 불현듯 내가 인생의 실패자인 듯한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의 거친 움직임에 내 머리를 맞은 건 단순한 충돌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그에게 내 인생 전체의 불합리함을 투영하고 있었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모를 감정이 쏟아지면서 저 남자의 하루를 마음껏 저주하고 싶었다.




저 사람을 밟고, 밀쳐내어 내 공간을 독차지하면, 내 인생에서 승리했다고 소리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다시 비좁은 공간 속 전동차 바닥에 닿은 내 발바닥이 느껴졌다. 이어폰에서는 다시 음악이 흘러 들어왔다. 다시 내 앞의 그 남자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누구일까.

어쩌면, 진료실에서 만났던 어느 환자의 가족일지도 몰랐다. 그는 새벽에 출근해서 어렵게 돈을 벌어 그 환자를 먹여 살리는 중일지도 몰랐다.

혹은 어쩌면 내가 지금 그렇게도 애지중지 끼고 있는 이어폰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 입고 있는 것을 만드는 길고 지난 과정 속 어딘 가에 관여하는 누군가 인지도 몰랐다. 그가 오늘 제 시간에 출근하지 못하면, 길고 긴 연결의 사슬 끝에 나의 불행과도 연결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서너 다리만 건너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지.

어찌되었던 그는 결코 나와 무관한 존재가 아닐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눈이 부드러워졌다.

지하철을 지옥철로 만들고 있는 것은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연결다리를 건너 나와 연결되어 있을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당신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당신의 하루가 행복하기를”




그것은 어쩌면
‘연결된 나’라는 존재를 감각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고립된 점 하나가 아니었다.
누군가와 얽혀 살아가는 존재로서, 조금은 더 넓고, 더 부드러운 나로 확장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경쟁에서 이기고,
모든 것을 독점할 수 있는 날을 꿈꾼다.

그러나 그날이 온다 한들,
그것을 과연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밀어내는 감각이 아니라, 조용히 곁을 감싸는 감각이다.

승리를 위한 예민함이 아니라, 연대를 위한 섬세함이다.


그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잊고 있던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다시, 조용히 되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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