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 구원인가 덫인가

: 내가 되어간다는 것의 자본주의적 의미

by 심연온

우리는 왜 이토록 ‘나다움’에 집착하는 걸까?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거기엔 모두가 말한다.
“너만의 콘텐츠를 가져라.”
“특별한 네가 되어라.”

그런데 정말 ‘나다워지는 것’은 우리를 구원할까?

아니면, 새로운 지옥을 만들고 있는 걸까?




아름답다라는 말의 기원이 “알다” 혹은 “앎”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를 조금 더 확장시켜 해석해보면,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러한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다워지는 것은 아름다워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나다워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심지어 미적인 의미에서도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요즘만큼 내가 되어간다는 것, 특히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나”를 강박적으로 요구하는 시대가 있었을까?


독일의 철학자인 레크비츠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단독성”이라는 개념을 꺼내 든다.

단독성이란 어떤 것이 고유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고유함이 대중에게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많은 관심을 받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후기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심을 유발하는 특별함은 곧 뛰어난 상업적, 상품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가령, 특정한 분야에 “오타쿠”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유튜브나 블로그, 그외 SNS의 컨텐츠로 만들고 그것이 우연한 기회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되는 경우가 그러한 예다. 이처럼 개인의 독특함은 그 자체로 자본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을 보라.
누군가의 ‘특별함’은 곧 조회 수로, 구독자 수로, 그리고 돈으로 환산된다.
관심을 받는 순간, 그것은 자본이 된다.
이제 자아실현은 더 이상 내면의 성숙이 아니라,
시장에서 팔리는 ‘콘텐츠’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되어간다는 것, 즉 자아실현의 의미를 바라보면 어떨까?


왜 사람들은 이다지도 자아실현의 강박에 빠지게 되었을까?

남들과 다른 나만의 특징, 나만의 개성, 나만의 능력의 개발에 이다지도 집착하게 되었을까?

자기개발영역에서, 그리고 정신건강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서비스에서 개인의 고유함을 찾아가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러한 것들이 이제 크나큰 돈벌이로 주목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독특함과 고유함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간은 보편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각자의 “단독성”을 추구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누구나가 다 엇비슷해 보이는 그저 그런 상태가 되곤 한다.

게다가 초기에 대중으로부터 “단독성”을 인정받아 대중의 관심과 인정을 독점한 개인은 “유명하니까 더 유명해지는” 단독성 자본의 독점화가 일어난다. 유튜브의 조회수가 높아지면, 조회수가 높아서 화제가 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조회수를 얻는다. 때때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계속 베스트셀러를 유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단독성의 자본은 다른 형태의 자본과 마찬가지로 승자독식이 된다.


승자독식의 단독성 게임에서, 자아실현에 골몰한 대부분의 개인들은 필연적으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단독성의 경쟁에서 자아실현은 진정으로 자기자신의 고유한 내면적 성장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역설적으로 타인의 관심과 평가에 매몰되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비교한다.


“나는 어떤가?”
“내 컨텐츠는 경쟁력이 있는가?”


그렇게 후기 근대의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내가 되어간다는 것은 진정으로 내가 되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는 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내가 되어가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자아실현을 향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울과 무기력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진료실에서 후기근대 자본주의적 자아실현에 실패하고, 그림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고, 자책하고, 우울의 늪에 빠진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정신과 의사인 나조차 후기자본주의적 의미에서의 자아실현에는 번번이 실패한다.
브런치에서 수십만 뷰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때 문득 생각한다.

이 게임은, 애초에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을까?

정말 우리는 자아실현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본주의가 설계한 게임에서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나’를 만들고 있을 뿐일까?





항우울제가, 정신과 치료가 정말로 이 문제를 해결해줄까?

나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의미에서의 자아실현에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단독성의 경쟁에서 승자독식의 게임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걸 아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 구조를 직시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연민을 보낼 수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말에서 연대가 시작된다.


자아실현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자본주의적 의미에서의 자아실현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의 단독성이 아니라, 서로의 연결과 연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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