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주도를 꿈꾸는 마음
한밤에 올려다봐도 쪽빛으로 아름다운 하늘, 바람에 온몸을 내맡기며 흔들흔들 춤을 추는 들풀, 햇살의 무늬를 한가득 그대로 그려내는 푸른 바다, 머리채를 사납게 휘어잡는 바람, 습기를 가득 머금은 새하얀 눈밭. 특별한 게 아니다. 사실은 그냥 그곳의 모든 게 좋았다. 아무렇지 않은 평범함에 나도 모르는 새 흠뻑 빠져들었다. 한 번 가고 두 번 갈수록 더 좋아졌다. 사랑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게 제주도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제주를 찾지 못한 지 벌써 10년도 훌쩍 넘었다.
제주살이도 한 달 살이라는 말도 없던 때, 한 달여 동안 제주도를 돌아다녔었다. 한 달이라고는 해도 사실 초반에는 (이제는 남이 된) 전남편과 친구들과 함께였고, 후반에도 후배 한 사람이 남아 동행했으니 혼자 여행한 기간은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였을 거다. 그 일주일이 고단하면서도 참 달콤했다. 마침 태풍이 몰려와 건물 전체에 손님이 나밖에 없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으스스함도 좋았고, 미숙한 운전 솜씨로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느라 밤마다 몰려오던 피로마저도 감미로웠다. 동행이 있을 때는 하지 않을 행동을 하며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혼자 여행하는 동안 나는 참으로 자유로웠다. 면사무소에 차를 대고 동네 사람들이 찾는 맛집을 물어보며 찾아다니고, 정자에 앉아 볕을 쬐는 할아버지와 말을 섞으며 마치 그 동네 사람인 것처럼 살아보는 재미가 좋았다.
그때 이호테우 해변에서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난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혼자서도 위태로운 초보운전자인 주제에 해변까지 데려다 달라는 그 아이의 요청을 호기롭게도 들어주었었지. 실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동화적인 ‘꽃새’라는 이름으로 자기소개를 한 그 애의 입에선 나온 가정사는 지나치게 드라마틱했다. 해변 벤치에 앉아 그 애는 왜 내게 그런 말을 했을까.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위로와 조언을 구하고 싶었던 걸까. 그 아이의 말이 모두 허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허풍과 실상, 고백과 엄살이 섞여 있지만 거기에 일말의 진실 또한 있다는 걸 들으면서부터 이미 알았다. 진위를 적절히 버무려서 낯 모르는 사람에게 전하며 가슴속 무엇인가를 털어내려는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런 걸 이방인 효과라고 한다지. 다시 만날 가능성이 낮아서 오히려 비밀과 고민을 쉽게 털어놓는 심리 현상.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시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낯선 존재에게 더 친절하고 후하게 굴기도 하니, 모르는 사람에게 오히려 속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껏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한참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린 동생을 대하듯 보듬어주던 기억이 햇살처럼 반짝인다. 이방인으로서 나누는 짧은 교감이 왠지 가슴 부듯했다.
여행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누군가 옆에서 ‘가자, 가자’ 하고 군불을 피우고 부채질을 해야 어디 한번 가볼까, 하고 마지못해 일어나는 식이었다. 그래도 제주도만은 예외라 늘 그곳을 그리워하고 먼저 나서서 가고 싶어 했는데, 꽃새를 만나고 3년 후에 다시 찾은 제주도에서 나는 이별을 결심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함께한 친구들의 여행을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서울에 가면, 서울에 가면’ 하고 이별의 수순을 되뇌었었다.
함께 맥주 한잔을 기울이고 싶어서 전화를 하고, 나를 보면 장난을 치고 싶어서 안달하고, 다시 만날 핑계를 잡느라 볼 때마다 뭔가 내기를 걸었던 그 사람을 나는 그곳에서 영영 잃어버렸다.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는 걸, 전에 알던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을 뒤통수를 맞듯 얼얼하게 깨달았다. 한때나마 빛나던 관계는 이미 너절해진 후였다. 사랑했던 쪽빛 제주는 금세 잿빛 제주가 되어버렸다. 그날 이후로 제주도라는 단어 자체를 꽁꽁 숨겨놓고 들여다보지 않고 살았다. 사랑했던 장소를 잃는다는 건, 그곳에 묻어둔 나의 시간과 계절까지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중문해수욕장이었던가. 이안류에 휩쓸렸을 때 다들 해안가로 헤엄치려 안간힘을 쓰는데, 나는 그저 무감했다. 물결이 흐르는 대로 그냥 힘을 빼고 가만히 있었다. 그대로 아예 먼먼 바다로 나아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안류에 휩쓸렸을 때는 해안으로 무리하게 헤엄치지 않아야 한단다. 물결의 흐름을 거슬러서 버둥거릴수록 더 깊고 먼바다로 빨려 들어간다. 오히려 힘을 빼고 거친 흐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자니 바다 멀리 흘러가던 파도는 어느새 방향을 돌려 내 몸을 그야말로 철퍼덕 해안가에 부려놓았다.
놓아야 할 때 못 놓아서, 버려야 할 때 미련스레 붙잡아서 한참 전에 엉클어진 인연이었다. 억지 노력으로 만든 건 꼭 탈이 나고 만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묻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내게도 일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그 시간을 아주 무너지지는 않은 채 건너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간간이 누군가를 만나긴 했다. 그런데 길게 만났든 짧게 만났든, 깊게 만났든 얕게 만났든, 여행은 잘 다니지 않았다. 사실 누구와도 추억을 쌓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기억할 거리를 만들기가 겁났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시 제주를 꿈꾼다. 누구와가 아니라 오직 나와 함께. 어슬렁거리며 누구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한껏 자유로웠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서가 아니라, 그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빛과 냄새로 몸을 채우기 위해, 온몸으로 낯선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내가 나를 좋은 곳으로 기꺼이 데리고 다니고 싶다.
발밑에 닿는 모래알의 감촉이 느껴진다. 먼바다로 자꾸만 나를 끌고 가던 그 파도는 이제 부서져 사라졌다. 깨진 조각도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비로소 생긴 것 같다. 앞으로 앞으로 가다가 지겨워지면, 슬럼프에 빠진 것 같은 날이 찾아오면, 살짝 옆구르기를 하듯 가뿐하게 비행기표를 끊을 것이다. 그때 꽃새를 태워주던 그 서툰 초보운전자의 마음으로, 하지만 이제는 내 삶의 핸들을 오롯이 쥐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이방인이 되어.
이제 흉터는 나이테가 되었다. 나는 다시 한 뼘 자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