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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다 Mar 02. 2024

달리기생활자의 겨울은 가고

생활러너로 정착하며 처음 맞는 겨울. 운 계절 대비해 활동성과 보온성을 약속하는 기모빵빵 상하의에 역시 보온과 속건을 동시에 잡는 기능성 바라클라바를 준비해 두었는데

일주일에 겨우 두 번 정도 달렸다. 달리는 사람에게 겨울의 길은 달릴 수 있는 길과 달릴 수 없는 길로 나뉜다. 지난 1월은 너어--무 추웠고 하늘에서 뭐가 자주 내렸다. 땅은 얼거나 질척이거나 미끄러웠다. 그리고 겨울밤은 아주 깜깜하다.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칼바람 부는 밤공원으로 나가는 일은 대단한 의지의 발현이었던 것이다. 퇴근 후가 문젠데. 달리기로 마음먹었다면 일단 현관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가방 던져놓고 신발만 운동화로 갈아 신고 바로 나가야 한다. 롱코트를 입고 뛴 적도 있다. 그러니 훌륭한 운동복인지 뭔지를 입을 일은 거의 없다. 야무지게 준비한 겨울달리기 풀장착 셋은 그렇게 여전히 청결한 상태다.

달리기를 왜 하느냐고 묻는다. 어느 날 그냥 자연스럽게 마음먹어졌다. 달리기로.


일하고 먹고 쉬려면 24시간이 모자라는데 굳이 따로 "헬스장 가기" 항목을 만들고 싶지 않은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한 정거장 전에 내려 걷고, 점심 먹고 나서도 앉아있기보다는 나가서 산책을 하는, 그만하면 합리적 생활운동러였다. 외모에 대해 검증받아야 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며 건강상 더 찌지만 않기를 바라는 현상유지가 목적이라 간신히 유지는 되었는데 어느 순간 한계가 다. 걷기만으로는 시간과 힘만 들 뿐이었다.


나는 어면 형태로든 계속 운동을 해왔다. 운동을 쉬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무리해 본 적도 없다. 몸은 크게 나빠지지 않고 그냥저냥 유지되고 있지만 좋아지지도 않았다. 내 나이에는 나빠지지 않는 게 좋아지는 거야, 이런 믿음으로 별로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 박현희 에세이 <오늘부터 나를 돌보기로 했습니다> 중에서

그래서 달리게 되었다. 하필 그때가 한여름. 처음엔 500미터도 숨찼다. 어떤 날은 달리고 나서 온몸이 너무 뜨거워져 얼음찜질을 하다가 몸살이 났고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는 근육통이 괴로웠지만 달리는 중에도 달리고 난 후의 기분도 너무 좋았다. "아, 이렇게 찾은 건가? 내 인생 운동?!"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러면서 많은 영상과 책을 찾아보며 달리기에도 올바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고 환경적인 요령도 터득했다.


마라톤 대회 같은 것엔 관심도 없는, 말 그대로 생활러너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 끝에 나에게 잘 맞는 방법을 몇 가지 얻었는데

1. 천천히 달린다. 페이스 6분 정도가 좋다.

2. 딱 좋을 만큼만 달린다. 평일 퇴근 후엔 3킬로 정도, 주말엔 컨디션이 가벼우므로 5-6킬로 정도다.

3. 익숙한 공간이 지루할 때쯤 새로운 장소를 찾아 달린다. 풍경이 바뀐다.

4. 주말엔 무조건 햇살 속에서 달린다.

5. 앞질러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나의 페이스로 간다.

6. 스쿼트와 함께 한다. 중년엔 무슨 운동을 하든 근육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달리는 행위를 하면서 나의 강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 건 정말 좋은 점이다. 나는 다른 러너들의 페이스에 관심이 없다. 어제의 나보다 후져지면 불안한데 다른 누구와 비교해서 불안한 일은 별로 없다. 생각해 보면 일생이 그러해왔다. 남들이 뭘 하니까 나도 해야지,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야지,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야지, 의 개념이 매우 희박한 사람. 이런 나에게 "달리기"는 최적의 운동으로서 지속이 가능할 것 같다.  


얼고 질고 미끄러운 겨울의 길을 뒤로하고. 올봄에는 남산 벚꽃길을 한번 달려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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