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나와의 소통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나의 여러 터닝포인트와 함께 했다.
때는 바야흐로 2016년, 셋째를 출산하고 도전한 장편동화가 신춘문예에서 낙방을 한 날이었다. 그날은 공교롭게 남편이 승진한 날이었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나와 남편은 서로 축배와 위로주를 건넸다.
나- 나는 낙방했지만 여보는 승진했네? 축하해요.
남편- 여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구절이 뭔지 알아?
나-뭔데?
책이라고는 결혼하고 나서 한 장도 들춰보지 않는 남편이었는데 새삼 저 질문을 하니 매우 흥미로웠다.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더니 말했다.
남편-"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여든 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이지.
나-오 그래?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이 가장 유명하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봤네.
남편- 사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쓰기 전까지는 비평가들이 가혹하게 비평을 했대. 헤밍웨이의 글은 이제 죽었다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니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겠어.
나-그러게.
남편-그런데 여보는 이제 처음 시도한 거잖아. 앞으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또 바라는 대로 이뤄지겠지.
그 당시에는 엄청 감동이었지만 알보고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지도 않았던 남편이 어떤 기사를 보고 내게 해 준 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그렇게 2016년 헤밍웨이는 내게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구 년 뒤 2025년 말이었다.
새해를 앞두고 여행을 간 곳에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게 되었다. 여든이 넘은 노인 산티아고가 본인의 나룻배의 몇 배가 되는 청새치를 잡고는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씨름한다. 힘이 좋은 청새치는 낡은 노인의 배를 망망대해까지 끌고 갔고 노인은 작살로 청새치를 찔러 죽이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성공의 기쁨도 잠시 바람을 힘에 의지해 뭍으로 가는 동안 청새치의 피냄새를 맡고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상어 떼들의 습격에 노인은 망연자실하고 배에 있던 도구들도 거의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뭍으로 왔을 때 노인의 배에 매달려 있는 것은 청새치의 대가리와 꼬리지느러미뿐이었다.
마침내 집에 돌아와 죽은 듯이 잠든 노인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나의 모습과 동일시되었다. 나는 무엇을 잡고 싶어서 망망대해를 나갔을까? 내 역량을 뛰어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게 맞을까? 'Burning out is better than fading out.'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맞는 걸까?
이전까지는 도전과 열정을 미덕으로 삼고 살았지만 마흔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이 되니 현재를 자족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을 얻으니 지금 하고 있던 고민에 해답의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내게 마음 편한 결정.
-타인의 영향력으로 내려지게 되는 결정.
전자와 후자 사이에 나는 주로 후자의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K장녀로서, 세 아이의 엄마로서, 회사의 직원으로서, 아내로서 기타 등등 내가 맡고 있는 역할들에 나를 순응시켜야 하는 것을 성공이라 믿고 어떻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을지만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내가 원하는 결정인지 헷갈렸던 것 같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코칭을 받고 코칭을 하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도 높아지는 것이 감사하다.
헤밍웨이를 통한 산티아고가 지금의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하다.
청새치는 나중이라도 잡을 수 있을 때 잡으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