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했던 연기의 꿈을 이뤄보다
나와의 소통에서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연기였다. 어릴 적 소심하고 겁이 많았던 여자아이가 어찌하여 연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돌이켜보면 나름 필모그래피는 아니더라도 작품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중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유치원 시절, 수두에 걸려 학기의 몇 달을 나가지 못했는데 졸업 발표회로 구연동화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쩔쩔매며 외웠던 동화를 다 풀어냈을 때에는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즐기기보다는 무사히 마쳤다는 데에 안도감을 갖고 무대에서 내려올 것 같다.
두 번째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회에서는 창작연극을 했다. 내용은 스쿠루지 영감을 한국 배경으로 각색한 심보 고약한 양반이야기였다.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내게 주연역할을 하사해 주셨다. 나는 심보 고약한 양반을 표현하기 위해 남동생의 한복을 빌려 입고 종이로 오려 붙인 수염을 쓰다듬으며 "예끼 이 놈아."를 외쳤던 것 같다.
세 번째는 다소 스케일이 커졌다. 중학교 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매우 저명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별빛 스타에 출연한 바가 있다. 그 당시 선우용여 배우님의 성대모사 "아니 아니 이게 모야앙~~."로 방송계를 평정했던 역사가 있다. 방송 출연을 하면서 내 진로가 혹시 방송 쪽이 아닐까 마음 한 켠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취업을 앞둔 대학생이 되면서 심각하게 나의 진로를 고민했을 때 연예인의 꿈은 접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연예인 되면 중학교 졸업앨범 털릴 텐데. 그 사진만은 공개할 수 없어.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경제력을 키울 수 있는 분야로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며 필요한 자격증, 경험들을 취득하며 배우, 코미디언, 작가의 꿈은 고이고이 접어 두었고 이제는 잊혀진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중년에 무직이 되고 나의 모든 가능성을 점쳐보았을 때 떠오른 것이 바로 연기였다.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펼쳐보자.
내 안에 여러 자아들 중 연기 자아가 드러나는 기점이었다. 연기 발전을 위해 연기학원에 등록을 했다. 유명 캐스터가 운영한다는 학원에 가 상담을 받았다. 제일기획까지 다니신 분이 어찌하여 다시 연기를 하게 되었냐는 부원장의 질문이 있었다. 덤덤하게 나의 계기를 설명하면 감동받으신 부원장님이 바로 배우 캐스팅 반으로 보내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초급반이었다. 발성을 연습하고 독백을 연기하며 같은 반 동지들과 배우의 꿈을 다져나갈 줄 알았는데 가성비를 따지는 다른 자아가 또 한 마디를 한다.
'이래서 어느 세월에 꿈을 이룰래? 너 무직이면서 이렇게 매달 연기학원비에 돈을 쓸 수 있어?'
현실을 망각할 수는 없었다. 연기학원을 계속 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그때 한 지인이 나의 연기 열정에 감탄하며 [시민극단 2010]을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극에 대해 배워 나갔다. 매달 희곡을 읽고 일 년에 한 번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데 참여하시는 분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극단 모임을 통해 얻은 것은 생업을 위해 일하시면서도 연기, 작품에 대해 열정이 있는 분들이었다.
라라랜드에서 여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The fool who dream]을 따라 부르며 '그래, 사람이 꿈을 꾸고 살아야지.' 하다가도 [레버리지] 책을 읽으며 '그래, 꿈은 무슨 꿈이야. 자산을 늘려야지.'를 오락가락하고 있던 사이에서 극단 분들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셨다. 그들도 나와 같이 생업에 매진하며 일말의 꿈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큰 위안과 용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얻게 된 것은 연출님이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차치하고 극의 완성도를 위해 몰입하고 쏟아붓는 연출님은 한강 작가의 그것과 성수역 4번 출구 과일 파는 사장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성수역 4번 출구에는 가끔 과일을 파는 사장님이 오신다. 사장님이 파는 과일의 당도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래서 사장님이 보이면 무슨 과일이든 일단 사둔다. 이 사장님에게 이런 신뢰를 갖게 된 것은 사장님이 가판대든 상관없이 본인이 판매하는 물건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좋은 과일을 찾는 수고를 덜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누가 사주든 안 사주든 꾸준한 사장님의 노력이 이런 신뢰감을 낳았다. 또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탄 것은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정점의 시기까지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꾸준히 본인의 글에 엄격한 기준으로 끝없이 노력했을 그녀의 지난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연출님도 마찬가지였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꾸준히 본인의 작업에 몰두하는 연출님의 지난 시간들과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 작업의 일부가 될 수 있음에 엄청난 영광이었다.
그리하여 2025년 6월 27일~29일까지 나는 함수도미노라는 연극을 하게 되었다.
마에카와 도모히로 작가의 [함수도미노]는 병원 앞에서 발생한 미스테리한 교통사고에서 시작한다. 묘연한 사고의 실마리를 각자의 방법대로 해석하면서 보여지는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서 나는 마카베 가오루 역을 맡았다. 역할 하나하나를 분석하면서 그 인물과 소통하였고 그를 통해 나 역시도 세계관이 확장됨을 느꼈다.
성경 한 구절도 못 외우던 내가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독백을 줄줄이 읊어댈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수많은 예술가들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