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대면하게,

aka 이 부부가 살아가는 법

by 이음언니

밤에 자려고 누우면 기와집 몇 채를 지었다 부수듯이 무수한 생각들이 스쳐간다. 무얼 하나 하려고 하면 가장 최상의 결과가 어떤 것이 될지 자동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플랜 a, b, c까지 마련해 둔다. 하지만 정작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치면 계획을 하나도 안 짜고 그날 되는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편하다. 미리 약속 잡기보다는 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하거나 즉흥적으로 어딘가 떠나기도 한다. 생각에서 실행까지의 속도는 굉장히 빠르나 작심 삼초로 실행 유지가 어렵다.


반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웬만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혼자 집에서 게임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본인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사교적이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별로 없다. 말은 많지 않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촌철살인이고 심지어 유머도 있다.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현재를 살아간다. 무얼 하나 시작하면 꾸준하게 하지만 무얼 하나 시작하는 법이 별로 없다. 본인이 주도하지 않는 일에는 시큰둥하나 주도성을 가지면 굉장히 계획적이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서 살고 있으니 매 순간마다 조율과 타협은 필수이다. 웬만해서는 저 사람이 싫어하는 일은 안 하려고 하는 게 평안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배우자와 함께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미술관 관람이 그것이었다.


유명한 사진작가의 관람을 앞두고 식구 다 끌고 대림미술관을 갔다. 티켓팅만 두 시간 걸리는 것도 유아동반이라 프리패스로 통과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남편의 표정...... 지뢰가 한 오천 팔백 개가 묻혀있는 지뢰밭을 데려온 듯한 개똥 씹은 표정에 그만 나도 빡이 쳐서 관람도 다 못 마치고 나와 버렸다. 이 정도 되니 이건 함께 사는 것 자체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고 서로에게 형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가 나다가 무력해졌다. 그 이후로 서로 말도 안 하고 대면대면하게 대했다. 그러다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에 대면대면하게 가족행사에 갔다가

점심에 대면대면하게 생태공원에 아이들 만들기 체험을 하러 갔다가

오후에 대면대면하게 숲놀이터를 가는데 한참 앞서 가던 남편이 갑자기 뒤돌더니 양손 모아 외친다.

오겡끼데스까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나도 양손 모아

와따시와 겡끼데스

해버렸다. 이로써 대림미술과 지뢰밭 사건은 끝이 났다.

대면대면하던 시간 동안 감사하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각자 서서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저 사람이 나의 일부가 되어 함께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내용은 로버트 A. 존슨의 [내면작업]이라는 책에 나온다.

바깥에서 만나는 남성에게 자신의 아니무스를 투사하는 여성은 그 사람 자체보다는 자신이 그에게 투사한 영혼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진다. 평범한 인간의 사랑을 방해하는 대다수 로맨틱 환상은 기본 토대가 바로 아니무스와 아니마를 외부의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탓이다. 남자가 자신의 아니마를 여성에게, 아니면 여자가 외부의 남성에게 자신의 아니무스를 투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려 든다. 자신들이 로맨틱한 투사를 한 외부 사람을 통해 실현되지 않은 무의식의 부분을 살아내려 한다.
-로버트 A. 존슨, 내면작업 94쪽-

내가 무의식 속에 그림자로 둔 욕망을 타인을 통해 해소하려 투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의거한 내용인데 이 부분을 깨닫고 나니 내 안의 욕구들을 나 스스로가 잘 통합시키는 것에 비로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깨달으니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도 많이 해소된 것 같다. 미술관이야 나 혼자도 갈 수 있는 것인데 굳이 서로 불편하게 안 가도 된다는 너그러운 마음도 생기게 된다. 우리 앞으로 로맨틱한 투사로 서로를 힘들게 하지 말고 통합된 자아로 대면대면하게 오겡끼데스까를 외쳐주자.

작가의 이전글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