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aka 풀리지 않는 질문

by 이음언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의 전제는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아는 것인 것 같다. 누구나 부모를 선택해서 온 것은 아니므로 본인의 부모를 거울삼아 나도 비슷하게 흉내 내며 사는 것 같다. 그러다 배우자를 만나게 되면 내가 자라왔던 환경과는 다른 모양의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 다름을 배움으로 받아들인다면 확장될 것이고 다름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인다면 배타적인 관계로 남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어릴 적부터 바쁜 엄마였다.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알뜰살뜰했다. 낭비하는 법도 모르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나를 매우 독립적으로 키웠다. 어떤 부분에서 독립적으로 키웠냐고 묻는다면 대답해 줄 에피소드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1학년 입학식 날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내게 강하게 남은 것은 입학식이 끝나고 걸어가는 나에게 어떤 아이의 엄마가 건넨 말이었다.

"너희 엄마는 어디 계시니?"

"우리 엄마요? 일하시는데요?"

아마 국민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떡집을 비울 수 없어 엄마는 가게로 갔고 입학식이 끝난 후에 나는 혼자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나에겐 집으로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기겁을 하며 엄마를 찾는 낯선 아줌마를 통해 지금 이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놀랄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는 날 늘 믿어주었고 내가 시행착오 겪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동시에 내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를 테면 잊고 전달해 주지 않았던 가방 속 성적표가 내 책상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다든지, 저녁 늦게 마음이 있던 오빠와 소곤소곤 통화하는데 난데없이 들어와 전화를 끊게 한다든지 하는 걸 보면 엄마는 분명 나를 오감으로 지켜본 것 같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을 통해 들은 여러 에피소드와 어머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유형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 세심하게 다빙면에서 챙김을 받은 남편은 나와는 다른 양육관을 가졌다. 나는 결혼을 하고 두 엄마의 다른 면을 경험한다. 이를테면 '파김치가 먹고 싶다.'라는 말을 똑같이 양쪽 엄마에게 했다면 나를 키워준 엄마는 내게 파 한 단을 보내준다. 그리고 파김치를 어떻게 담는지 방법을 알려준다. 반면에 남편을 키워준 엄마는 글라스락에 파김치를 담아 보내준다. 젓가락만 들고 먹으면 된다. 이런 다른 방식은 내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다양한 측면으로 고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방법은 다소 터프하더라도 아이의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주었고 남편의 방법은 과보호로 보일 때가 있을지라도 아이에게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었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두 방법 모두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안다.


오늘은 회사에서 친구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힘들다는 하소연을 했다. 양은냄비처럼 온유한 엄마가 되고자 하는 모습에서 극단적으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엄마의 모습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나의 모습에 나조차도 견디기 힘들었다.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친구는 내게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너는 좋은 엄마야. 왜냐면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너를 몇 년 봤지? 17년은 넘은 것 같아. 17년을 봤으니 네가 어떤 사람으로 의도적으로 보이려고 했어도 너의 본질을 아는 충분한 시간이었을 거야. 너의 아이들이 하루는 어떤 엄마, 하루는 어떤 엄마로 보였어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 알고 있으니 좋은 엄마인 걸 느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좋은 엄마가 누구인지 고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 자체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먼저 임도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어떤 옷을 입히고 어떤 학원을 보내고 무엇을 해주기 이 전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엄마가 되는 기본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친구에게 감사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은 또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이야기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방향을 알게 된다. 내 안의 불안과 조급증이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이를 비판하며 정죄하게 됨을 깨닫는다. 내가 실수했을 때 그 실수를 만회할 시간과 기회를 주고 묵묵히 기다려 주었던 부모와 같이 나도 아이에게 그런 부모가 되길 소망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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