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에 일어나는 딸 이해하기

aka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

by 이음언니

아이의 공백을 존중하고 아이 스스로가 그 공백을 채워나가는 것을 기다려 주는 것은 실로 엄청난 도인의 경지를 요한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을 앞둔 첫째는 방학이 된 후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엄청난 계획을 말해 주었다.

낮 12시 반까지 자기.

이유를 물어보니 키가 크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계획을 듣는데 뒷목으로 손이 올라가고 입 밖으로는 제정신이냐는 말이 튀어나올 지경이지만 나는 두 손으로 내 입술을 틀어막고 안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네가 지금 그럴 때냐. 다른 친구들은 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냐. 어쩌려고 지금 이러고 있냐.'라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나를 가만히 본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

그 물음은 곧 예비 1학년이었던 아이와의 대화를 소환시켰다.


"OO고등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 같아. 자율적으로 과목도 고르고. 우리 딸이 그 학교에 가면 참 좋을 것 같아."

라고 얘기했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나는 그 학교를 간다고 말하기 힘들어.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는 게 내가 꼭 그 학교를 가길 바라기 때문인 거 같은데 내가 혹시 못 들어가면 엄마 실망이 클까 봐 장담을 못하겠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의 의지보다 내 욕심이지 않았나 반성이 됐다.

"그러게. 그럴 수 있겠다. 우리 딸 말을 들어보니 엄마 기대 때문에 부담됐겠어. 엄마는 우리 딸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가꿔나가는 게 훨씬 중요하지 학교는 중요하지 않아. 얘기해 줘서 고마워!!"


매번 아이의 삶의 주인은 아이라는 것을 되새기지만 눈치 없는 애미는 자꾸 아이의 삶에 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저 모양으로 살았을 때에 결과가 처참하고 아이가 일명 [성공하지 못한 삶]을 살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이 나의 편도체를 활성화시킨다. 그럼 내 안의 누군가가 또 소환된다.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

아이 입장에서는 이해심이 많아 보이려는 엄마와 정신이 나간 두 엄마를 대하면서 매우 혼란스럽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정도 자아성찰을 하다 보니 예전 아빠와의 대화가 또 소환되었다.


그 당시 우리 부부는 그간 연이은 출산과 육아로 일상이 힘들었지만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지지로 현명하게 지내오는 듯해 보였다. 나의 복직 이전까지는 말이다.

2월 복직과 동시에 남편은 눈에 띄게 신경질적으로 변해갔고, 여유 없이 날카로운 남편을 바라보며 나도 동시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복직으로 인해 나의 신경도 말도 못 하게 날카로워졌지만 너무나 달라진 그의 모습에 나는 티도 내지 못하고 묵묵히 받아주려 노력했다. 복직으로 인해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은 총 4분이었다. 아침 등원 선생님 1분, 저녁 아이 돌봄 선생님 2분, 가사관리사 1분. 인원수를 줄여서 한 분에게 몰아서 일과 돈을 드릴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집에서 있어본 결과 돈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여유 없이 힘들어지면 아이들에게도 짜증이 나고 일의 지속성도 힘들고 그분 사정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이 우려되어 일을 분담하여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저글링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힘들다고도 말도 못 했다. 네가 벌린 일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핀잔을 들을까 봐.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점점 더 소원해졌고 그는 나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고 나도 그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고 사소한 것에 심하게 토라지고 말도 예쁘게 나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불안해했다. 뭐가 문제일까.

예전에 애가 둘만 있을 때는 싸울 때마다 '이혼을 하네마네.' 했지만 이제 아이가 셋이나 되고 우리의 섣부른 판단으로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더 이상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지극히 내 사정에 해당되는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 결혼 유지냐 이혼이냐 어떤 것이 더 좋을지는 다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관계가 점점 더 소원해지니 난감했다.

예전에는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니 우리가 벌려놓은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는 논리였는데 이제는 셋이나 낳아놓은 아이를 보며 너와 나의 관계가 어떻든 우리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한다는 상황에 이르렀다. 비참했다.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사는 건가? 대부분 그렇게 사는 건가?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애들 때문에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는 중에 엄마의 환갑으로 가족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저녁에 아빠와 엄마 나와 남편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고 RAM 메모리가 부족할 때처럼 버벅거리는 증상이 있었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돼 있었다. 남편은 거의 대부분 뚱한 표정에 본인이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신경질을 부리고 상대를 비난했다. 우리의 지금에 대해 담담하게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아빠가 말씀하셨다.

"딸아, 네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래. 아빠도 그래. 아빠도 그래서 밤에 잠을 잘 못 자.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는 말을 못 하지. 지금 삶이 전쟁터인데 어떻게 마음을 편하게 먹겠니. 지금 너희는 현역이고 잠깐만 눈 돌리면 총알이 왔다 갔다 하는데.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퇴근하는 길에 회사 일은 잊어버리고 원래 나의 모습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문을 딱 여는 순간 집은 난장판이지 애들은 달려들지. 그러니 다시 짜증이 나고 좋은 말이 나오기가 힘들지."

아빠가 이 정도 얘기를 해주니 너무 내 마음을 잘 알아줘서 눈물이 줄줄 나올 지경이었다.

"평일은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주말이라도 예비역의 마음으로 지내려고 노력해 봐. 그리고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서로 더 힘들어지니 어느 부분에서는 좀 내려놔. 애들 이 한두 번 안 닦으면 어떻니. 서로에게도 그래. 해야 할 일과 신경 쓸 일이 많아지니 '내가 얼마큼 했는데 네가 얼마큼 했어? 네가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그걸 안 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싸우게 되고 여유가 없어지지. 하지만 상대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사는 거잖아. 그러니 딸아 네가 네 남편에게 딱 5%만 더해라. 5% 더 하는 것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무슨 대가를 바라겠니. 물론 네가 5% 더 하는 것을 남편이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수 있어. 그러나 네 남편이 '아~ 내 와이프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이렇게 신경 쓰고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깨닫게 되면 10%,17% 더 하게 된단다."

"아빠. 나는 이전에 이보다 더 힘들었을 때 그래도 남편이 위로해 주고 지지해 주니 이겨낼 수 있었어. 그런데 요새는 남편도 힘들어하고 여유도 없고 지지는커녕 싸우게만 되니 그게 더 힘들어."

"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아빠가 이제 돌이켜 보니 내 자식들보다 왜 손주가 예쁜지 알겠더라. 내가 자식 키울 때는 전쟁터였어. 내 자식들 죽지 않게 돌봐야 하는데 동시에 나도 죽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니 그때 자식이 그렇게 예쁜 줄 모르고 살았던 거 같아. 하지만 자식이 자식을 낳으니 그게 그렇게 기특하고 예뻐 보일 수가 없어.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진짜더라고. 너희도 내 말이 마음에 와닿지는 않을 거야. 그건 시간이 지나서 경험해 봐야만이 아는 거니까. 삶이 힘들고 짜증 난다고 해서 남 탓하고 신경질만 부리면 그 사람은 성공하지 못해. 조금 더 나를 돌아보고 상대에게 틈을 줘서 나에게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성공하는 거다."

"나는 어느 선에서 만족해야 할지 모르겠어. 부자도 되고 싶고 아이들도 잘 키워야 하고 그러다 보니 생각이 멈추질 않아. 그런데 나만큼 신경 쓰지 않고 맘 편하게 사는 상대를 보면 어느 순간 억울하기도 하고 속 편하게 사니 부럽기도 하고 그래."

"그건 네 욕심이야. 어느 부모인들 자기 자식 안되길 바라겠니. 누구나 자기 자식이 세상에 선발대로 서서 이끌어 나가고 선행하길 바라지. 그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부모가 하는 건 한계가 있다. 본인이 느껴야지. 오늘 낮에 두릅나무에 두릅 따러 우리 꼬맹이들 데리고 갔는데 내가 얘기했지. '여기서 더 오면 나무에 가시가 있어서 찔릴 수 있어요. 더 오지 마세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아이들이 듣니? 더 다가오지. 그럼 그냥 두는 거야. 본인들이 가시도 찔려보고 해야 더 크게 깨닫지."


아이가 드룹나무 가시에 찔려서 피가 나고 아파하고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옆에서 응원하고 믿어주는 마음으로 있어 주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부모가 그랬듯이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오늘 낮 12시에 일어난 첫째를 위해 맛있는 밥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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