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대한 대화
너와 나는 얼마나 잘 얘기가 통할까?
대화 대상은 나와 타자로 나뉜다. 타자에는 친구, 연인, 배우자, 자녀, 부모, 회사 동료, 주변인, 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화는 주로 상대에게 전달되는 말 자체와 그 말을 실어 나르는 억양과 목소리 톤, 그리고 표정, 몸짓의 상호작용이다. 내가 주고, 상대에게 받은 것에 서로 반응하고 느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누군가와의 대화는 엄마 자궁 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와의 대화는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것 같이 영 불편하고 찜찜할 때가 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말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말을 잘하는 것과 대화를 잘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말은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음성 기호 자체라면, 대화는 생명력을 가진 말을 통한 대상과의 상호작용이다. 탁구 같다고 해야 할까? 나는 직업적 특성이나 가족 특성으로 그동안 원하든 원치 않든 수도 없는 환경의 변화를 맞닥뜨리면서 대화를 했다. 잘 풀리는 대화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씁쓸한 대화는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잘하고 싶었고 잘 풀리는 대화의 조건들도 궁금해졌다. 대화를 잘하는 이들을 면밀히 관찰하기도 하고 여러 문헌들을 읽으며 깨달은 점이다.
성공하는 대화의 기본전제는 대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기대감인 것 같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이렇게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삶에 대한 희망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잘 풀리는 대화의 희망은 상대에 대한 기대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두번 째로는 열린 대화 방법이다. 결론이 정해진 대화가 하늘을 날 수 없다. 주제중심이 잡힌 줄기에서 대화의 가지들을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열린 질문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열린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내 기준에서 판단하게 되면 상대가 이해되지 않지만 상대의 상황에 내가 들어가면 그의 입장이 이해된다.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 놓인 상대들과 공감하며 대화를 뻗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이런 태도는 코칭을 배우면서 급격히 확장되었다. 코칭은 대화 상대의 가능성을 신뢰하며 상대가 더 뻗어나갈 방향을 깨달을 수 있도록 확장성 있는 질문을 해주고, 상대가 뻗어나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격려와 칭찬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칭찬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칭찬과 아부의 경계도 모를 수 있다. 설혜심 교수의 [매너의 역사]에 따르면 1625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칭찬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고 한다. 첫째로 있는 사실을 칭찬하는 통상적인 칭찬, 둘째로 남에게 듣지 못했지만 본인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지능적인 칭찬, 셋째로 듣고도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물정 모르는 칭찬, 넷째로 상대를 비하하는 것 같으면서 상대를 띄워주는 무림고수급 칭찬이 있다고 한다. 무림고수급 칭찬은 상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기발한 재치를 가진 이만이 할 수 있는 고단수 칭찬이다. 이런 역량은 상대로 하여금 잊지 못할 대화의 기억을 갖게 한다.
반면 어떤 대화를 시도해도 꺼져가는 불씨같이 시답잖게 대화가 끝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의 주요 특징도 역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찾을 수 있다.
다수 감시병들은 감정이 메말라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몇 년 동안 수용소에서 점점 심해지는 야만적 행위를 보면서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도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가학적인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말리지도 않았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기능만 남아있다. 기능은 일의 효율과 결과만 중시할 뿐이다. 과정에 대한 희로애락은 사치이다. 설혜심 교수의 [매너의 역사]에서 인용된 1824년 영국 런던에서 출간된 [성격의 유형들] 중에 무뚝뚝함과 거만함은 상대에 대한 경멸과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기준이 생기니 나와 내 주변인들의 관계를 다시 살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좋은 대화는 나와 너의 신뢰하는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에 대한 공감을 통해 확장하는 것이로구나.
필요할 때만 연락해서 본인 중심의 메시지만 던지는 사람, 자신의 처지를 치장하기 위해 허풍 떠는 사람, 교묘하게 상황마다 말을 바꾸는 사람, 메마른 감정으로 염세적 태도를 가지고 상대를 단정 짓는 사람 등등 우리는 대화하기 너무 피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살고 있다. 그러는 중에 가뭄의 단비처럼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퍽퍽한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나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그이에게 얘기한다.
너와 나의 삶이 맞닿아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