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소통
살면서 들었던 많은 말들 가운데 내가 가장 위로받았던 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생각을 하다 보니 위로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된다. 위로는 무엇인가? 따스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위로받았다는 것은 내가 괴로움이나 슬픔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전제가 된다. 나는 언제 괴롭고 슬픔에 빠져 있었을까? 내가 크게 느꼈던 슬픔은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느꼈을 때이다. 그리고 그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를 연달아 낳은 직후였다.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고 찬란한 행복을 누려야 하는 때라고 머리는 말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수면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욕구도 채울 수 없었고, 아이를 돌본다고 누군가 월급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결과 없는 투자였고 이런 태도로 맞이하는 일상은 고통과 무의미 자체였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니 나는 점차 우울에 빠졌다. 우울은 모든 부정적인 기억들을 상기시키고 나를 잠식시켰다. 이 모든 것은 원활하지 않은 호르몬 분비와 자기 결정능력의 상실과 기본욕구 미충족에서 오는 결과였다. 나는 차분히 일어나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어보았다. 12층에서 바라보는 바깥은 시렸고 높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일을 벌였다. 내 손을 들어 나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또 한 대를 때렸다. 눈물이 흘러나오는데 눈물의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문제는 나는 가족 구성원의 일부였고 나의 이런 감정과 행동은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나의 이런 행동을 발견한 남편은 내 손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내 핸드폰에서 목사님을 검색했다고 한다. 당시 남편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 안티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막연하게라도 목사님께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하필 그때가 수요일 저녁이었고 목사님은 수요 저녁 예배로 전화를 받지 못하셨다. 그래서 다시 남편은 사모님을 검색했다고 한다. 몇 분의 사모님이 검색됐고 그중에 가장 익숙한 이름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곧 우리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이상해요. 좀 와주세요."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침대 위였고 나는 하릴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내 옆에 있었고 내 손을 잡아주며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엄마를 보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 그 시절에 아빠와 엄마가 다투던 그날에 내가 나서서 둘을 중재하지 못하고 무서워서 숨어버렸던 비겁했던 내 모습에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전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는 곧 목사님, 사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남편과 망연자실한 나는 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나는 앞뒤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주님을 믿고 싶지만 내생은 믿을 수가 없어요. 내생이 진짜 있다면 주님을 믿지 않는 우리 엄마, 아빠, 시부모님, 남편까지 모두 지옥에 간다는 거잖아요. 어떻게 그래요?"
맥락 없는 이야기를 하며 나는 엉엉 울었다. 목사님은 내 말을 잠잠히 들어주시고는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주님의 뜻이 있고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니 그분께 맡기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다. 전도를 왜 하려고 하니. 내가 예수 닮은 모습으로 사는 것이 전도다. 네가 가족들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구나."
뜬금없는 이야기에도 나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화해 주시는 목사님 덕분에 나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목사님은 대화를 이어가셨다.
"나라는 산이 있다고 생각해 봐. 그 산은 어떤 날은 해가 비칠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구름이 낀 날도 있지. 구름이 낀 날은 사방을 둘러봐도 구름밖에 보이지 않으니 두렵고 죽을 것 같을 수 있단다. 하지만 바람 한 번만 불면 그 구름은 사라진다. 지금 너라는 산에 구름이 끼었구나. 하지만 우리 인지하자. 이것은 바람 한 번이면 없어질 구름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우리 병원도 가고 약도 먹어보자."
도저히 풀 수 없을 것같이 엉켜있던 실타래는 조금씩 풀렸고 나는 비로소 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내가 보였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내가 보였다. 소중한 내가 보였다. 부푼 뺨을 쓰다듬었다. 또 눈물이 나왔다.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소란이 진정되고 나도 안정되자 손님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에는 남편과 아기들이 있었다. 누구에게 신세 지는 것을 민폐라고 생각했던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도 잘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에게 엄청나게 민폐를 끼친 것 같았다.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알아서 잘해야 하는데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하다."
그러자 남편이 내게 말을 했다.
"여보 내가 결혼을 한 번 하면 못해도 80년은 배우자랑 같이 살 텐데, 그러니 얼마나 고르고 골라서 여보를 골랐겠어. 그러니 내게 더 그래도 돼."
내게 민폐를 더 끼쳐도 된다고 틈을 주는 남편이었다. 내가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꼈을 때 내게 손을 내밀어주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나는 산이었고 민폐를 더 끼쳐도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니 비로소 나는 일어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