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와의 소통
업무 분장은 비단 비즈니스를 하는 곳뿐만 아니라 집에도 필요하다. 처음에는 부모의 모습을 거울삼게 된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베이비부머 세대로 전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헌신이 조직의 성장,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고를 내면화하여 조직에 헌신하였다. 가족과의 시간도 그 헌신에 당연하듯 희생되었다. 그 시대에 중산층의 모습은 아버지는 회사에 다니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며 자식의 교육에 힘을 쓰는 것이 대다수였다.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은 경제적 도구로 돼버리고 가장은 회사라는 공적인 공간에서의 자아를 키워가고 가정 안에서 사적인 자아는 거의 소멸되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의 꿈과 희망은 가슴속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가족 뒷바라지가 미덕이었으므로 사회적 역할이 거의 소멸되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아빠 엄마의 역할이 원래 그런 건가 보다 하고 그들이 역할분담을 이어받게 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님의 헌신 덕으로 우리 세대는 우리 자체의 개성을 존중받고 남자고 여자고 능력을 키워 세상에 쓰임 받는 것으로 환영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 세대부터는 집안에서의 역할 구조부터 새롭게 개편했어야 했다. 역할의 분담과 이행이 사전에 협의되지 않고 누군가에게만 과중하게 부과된다면 결코 평화롭게 지속가능할 수 없다. 집이 안식처가 되지 않고 말 그대로 집구석이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감사한 것은 나와 남편의 역할이 유동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남편은 연구원, 나는 광고기획자였다. 우리는 회사의 제도를 통해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할 때 육아휴직을 번갈아 하며 경제적 역할과 집안을 보살피는 역할을 번갈아 할 수 있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보살피던 그때에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이 내 친구들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너희들 얼마나 힘드니? 집안일이라고 해도 티도 안 나도 안 하면 엄청 티 나고.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내 친구들은 당시 남편에게 성자와 같다고 추켜세웠다. 하지만 그 말을 하게 되기까지 우리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치열한 공방전과 시행착오가 있었음을 친구들이 인지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집구석의 업무분장을 어떻게 해야 서로 불만 없이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가정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수입이 필요하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빨래와 청소도 해야 하고 건강을 위한 요리도 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절대로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 일임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싸우지 않고 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모든 것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한다는 자연의 법칙인 엔트로피처럼 이 놈의 집구석은 내가 아니면 치울 사람이 없고, 이틀만 빨래를 안 돌리면 산더미가 되어 질식사를 할 것 같고, 먹고 난 그릇도 치워야 하고 눈을 돌려도 맨 지저분한 것만 보이니 도망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눈을 치우는데도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상황이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먹고 입히고 재우는 역할과 같이 다소 단순했다면 사춘기 학생이 되면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냐도 기민하게 살펴야 했다. 부모의 역할은 점점 복잡해졌고 쳐부숴야 하는 일상의 업무들도 많아졌다. 이쯤 되면 남편이 전우이기도 하고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네가 안 하면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눈치싸움으로 감정이 곪을 대로 곪을 수 있다.
다행히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해 본 경험은 집안일을 리스트업 하고 업무분장을 나누는데 도움이 되었다. 요일과 시간에 따라 서로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누니 일주일치 시간표가 세워졌다. 이 과정을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니 남편도 어느새 주도적이 되어서 계획을 짜고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과정이다. 상대가 맡은 역할을 수행할 때 다소 내 기준에 맞지 않더라고 무어라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중요했다. 기다린다는 것은 너와 나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너의 속도에 맞춰서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런 협업이 지속되면서 서로의 유동적 역할 분담은 안정권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남편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당신 이것 좀 해."라고 하면 죽어도 안 하는 남편인데 "내가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아. 도무지 해결을 못하겠어. 어떻게 하지?"라고 하면 두 손 걷어붙이고 해결해 주는 남편이었다.
나를 톱니바퀴의 중심부로 여기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게 멈출 거라는 생각한 것은 오만이었다. 나는 우주의 먼지조차 되지 않는 작은 존재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우주보다 더 큰 존재기도 하다. 이런 유동적 인식과 협업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집구석의 업무분장도 유동적이고 합리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