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딸이 닮고 싶은 엄마가 되길
주류(主流) 안에서 비주류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러움을 느낄 때도 있고, 무기력함에 휩싸일 때도 있다. 그럴 때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포기하거나 버텨내거나.
초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떡집딸’이라고 불릴 때가 있었다. 그것은 단칸방에 살았던 나에게 묘한 자격지심을 느끼게 했다. 자격지심을 누가 준 것이 아니었지만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부와 사회적 지위에 격차를 느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목표는 남들과 비교했을 때 무시당하지 않을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효율을 강조하며 살았고, 시행착오를 최소로 줄이며 완벽성을 기하는 태도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원하던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도 맡게 되었고, 초등학교 때에는 상상도 못 할 연봉도 받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서른 살부터 서른세 살까지 연달아 세 명의 아이를 낳고 키웠다.
효율을 따지던 나는 아이들도 시행착오 없이 완벽하게 키우기 위해 긴장하고 스케줄을 짰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둘째가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나중에 결혼도 하고 싶지 않고 회사도 다니고 싶지 않아.
이유를 물으니 엄마인 내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도, 회사를 다니는 모습도 너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은 내 머리를 강타했다. 나는 아이들이 엄마가 큰 회사에 다니는 것도,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정 반대였다. 그 이야기는 자식양육조차도 어미인 내가 기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눈치채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가족 관계는 삭막해지고 아이들에게는 틱장애, 불안정 애착 증상이 나타났다.
그 무렵, 나는 온몸에 염증 반응이 일어나 여기저기가 이유 없이 아픈 상황이었다. 회사에서는 간부급으로 진급하면서 클라이언트의 대응, 함께 일하는 동료, 후배들의 업무 분장, 컨트롤을 모두 해야 했다. on-going으로 진행되는 글로벌 프로젝트라서 전 세계에 위치한 법인에서는 밤낮없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흔 맞이 사추기를 크게 맞으면서 더 이상 내 역량으로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선택해야 했다.
그 동안 충분히 나의 욕구를 억누르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삶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렇게 살면 살수록 계속해야 하는 일들만 늘어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없어져 갔다.
좋은 회사 들어가고, 돈 많이 벌어서 서울에 자가 아파트를 분양받고 집 값을 성실히 갚아나가는데 아이들은 커가고 그러다 보니 더 큰 집으로 옮겨야 하고, 아이들도 잘 키워야 하고......
나는 없었다. 이건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 같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울감도 맛보았다. 나는 기로에 서서 생각했다. 삶을 포기할 것인가, 버텨낼 것인가?
버텨내기로 작정하고 심리 관련 책을 공부하고 심리상담과 코칭을 받았다. 상처받고 잔뜩 움츠린 내면 아이의 나를 발견했다. 성인이 된 내가 내면 아이를 위로했다.
괜찮아. 너는 너의 존재로 귀하고 사랑받을 사람이야.
그제야 나의 내면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내면에서 나와 내가 화해하니 많은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효율을 중시하고 성과를 강조하며 타인과 비교하는 삶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자유롭게 꿈을 꾸는 삶으로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 살아볼까?
딸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내가 살아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래. 하고 싶은 것 다 해보자.
그때부터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았다.
연기해보기
코칭 배우기
외국에서 로컬처럼 지내보기
아이들과 아침에 자유로운 시간 보내기
꽃 시장에서 꽃 사 와서 화병에 꽂아보기
식물 기르기
동화 쓰기
홈케어로 피부 가꾸기
집밥 해 먹기
부모님과 교회 가기
봉사하기
소통 관련 강의하고 책 쓰기
산책하기
아이랑 여행하기
심리 대학원 진학하기
심리학 책 읽기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는 파이프라인 확보하기
뭐 이렇게 누구나 다 해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동안 '왜 때문인지' 못해왔던 것들을 리스트 해보았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숨 쉴 틈 없던 일상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사소한 이벤트들이었다.
이렇게 나는 내 멋대로 살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삶뜨기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