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나와의 화해 [1]
초등학교 시절 아니, 나한테는 국민학교 시절 아빠를 시험해 본 일이 있다.
"아빠 백원만."
그러면 아빠는 이백원을 주었다. 이백원을 달라고 하면 삼백원을 주었다. 늘 내가 달라고 한 돈보다 백원씩 더 주었다. 어느 날 그 이유를 물으니 아빠는 웃으며 "그냥"이라고 말했다. 아빠는 언제나 내 의견을 존중해 주고 나무란 적이 없다. 중학교 시절 힙합바지를 골반에 걸치고 바지 끝단으로 땅바닥을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동네가 우리 딸 덕분에 깨끗해 지겠다. 바지로 청소를 다 해주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참 조용한 사람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기 보다 혼자 일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도 안 볼 때 나에게 아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엄마의 그 표정을 보면서 깔깔댔지만 주변에서는 왜 내가 웃는지 알지 못했다. 또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잘 할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니 못 할 것 같다가도 왠지 나는 잘 할 것 같았다. 대학교 시절 한 기업의 핵심가치 교육을 위한 프리랜서 작가로 일한 적이 있었다. 몇 시간 째 흰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만 노려보며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엄마가 방에 들어와 뭐하냐고 묻길래 도무지 글이 안 써진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때 엄마가 한 마디를 하고 나갔다. "그 까짓 꺼 발가락으로 써도 몇 장은 그냥 쓰겠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그 얘기를 듣자마자 정말 몇 페이지가 줄줄이 써졌다.
나는 지혜가 필요할 때는 아빠를 찾았고 위로가 필요할 때는 엄마를 찾았다. 아빠, 엄마는 나라는 사람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둘이 만났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둘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몇 평되지 않는 떡집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하지만 행동이 빠르고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자와 생각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함은 종종 고성의 말다툼으로 치환되었고 치환된 에너지는 예민하고 겁 많은 어린 여자아이에게 불안으로 대치되었다. 둘은 분명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둘의 균열에 끼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는 둘의 화합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노심초사 고민했던 것 같다. '나라도 잘 해야 둘이 기뻐하려나?' 겉으로는 반항기도 다분했지만 내면에는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실망하는 눈빛을 보는게 두려웠던 여자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다소 양가적으로 학창기 시절을 보냈다. 당시 노는 아이들이 강해보이는 학교 분위기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노래방은 따라 가더라도 담배는 피지 않았고, 반에서 일등은 못해도 부모님이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성적은 받았다.
누적된 불안은 나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택의 기준은 나의 만족보다는 엄마, 아빠의 만족에 맞춰졌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성적은 나왔고, 운이 좋아 문학 특기자가 되어 대학교도 2년 전액 장학금도 받았고, 외국계 회사에 입사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늘 엄격했다.
그 정도 가지고 어디서 약해빠진 소리를 하고 있어. 어림없지. 너는 더 달려야 해. 남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알아?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너는 밀려나는 거라고.
성취를 중요시 하는 목소리는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성취의 가치를 타인의 인정으로 증명하려 했다. 그 욕구는 나를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반열에 올려두는 요소로 작용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브레이크가 걸린 채 엑셀을 밟는 차와 같았다. 아무리 주변의 인정을 받아도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내면의 강한 성취자아는 여린자아를 타박하며 그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성취자아가 폭주하면 폭주할수록 긴장도는 높아지고 높아진 긴장도를 낮추기 위해 술을 마셔댔다.
그러던 중에 책을 한 권 읽게 되었다.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어릴 적 나의 불안을 잠재워 주지 못했던 부모대신 성인이 된 내가 나의 내면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작고 여린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의 내면 아이는 나의 성인자아가 찾아오자 짐짓 놀라했다. 반가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움츠렸다.
안녕?
대답이 없는 내면아이. 생각보다 부끄럼을 많이 타고 겁이 많은 아이라 놀랐다.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면서 외제차를 탔고 원하면 명품구두도 사면서 때마다 친구들과 파티를 하는 나에게 이런 내면아이라니... ...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내면 아이는 비유하자면 쭈그러진 풍선같았다. 그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성인이 된 나는 나의 내면아이에게 진심을 다해 화해와 위로의 편지를 썼다.
너 많이 두려웠겠어. 그런 너를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겠다. 너보다 너의 주변을 위한 선택을 했던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는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돼. 누구도 뭐라하지 않아. 내가 널 지켜줄게.
그 편지를 쓰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기점으로 내가 나에게 하는 말들이 달라졌다.
'어림없지.'보다는 '그럴수도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에서 '그래도 괜찮아.'
'아직 멀었어.'에서 '지금도 충분해.'
'이 정도로는 인정 못받아.'에서 '내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스러워.'
성취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던 시간에서 나의 존재를 내가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나에게 덜 못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