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말공식을 가지고 있다.

aka남편 말공식 풀기

by 이음언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의 학식 수준을 떠나 계속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몇 마디에 진을 빼게 하는 사람이 있다.

내 배우자라 하더라도 어느 날은 위로를 받다가 어느 날은 상처를 받고는 저 사람이 내가 사랑한 사람 맞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변했네 변했어.' 라며 횟수가 늘어가는 세월 앞에는 장사 없는가 싶을 때도 있었다.

김윤아 작가의 [말그릇]

이 책을 읽어보니 저마다 자라온 환경이나 경험들에 의해 갖게 된 말공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이미 답을 정하고 물어보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고 본인의 의견만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공식을 갖게 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관계를 맺는 데에도 좀 편해졌다.

예전에 서울식물원으로 남편과 아이들과 놀러 갔을 때 점심 먹을 식당을 찾으러 핸드폰 맵을 보며 한참 길을 찾아갔다. 남편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게 됐는데 남편은 의외로 굉장히 화를 냈다. 내 잘못이 얼마나 컸는지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나의 고질적인 인성의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이 정도로 화날 일인가 싶기도 하고 먼저 걸어갔다고 내 인성까지 이렇게 평가받아야 할 일인가 싶어 지니 저렇게 나를 몰아가는 남편이 형편없어 보이고 애를 셋이나 낳아 이혼도 못하는데 평생 어찌 살아야 하나 한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말그릇을 읽다 보니 남편의 공식을 풀게 되었다. 상당히 계획적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굉장히 불안해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갑자기 눈앞에 안 보이니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고 그 불안감의 표현으로 나를 탓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남편에게.

"여보 어제 내가 갑자기 안 보여서 굉장히 불안했겠어. 미안해. 그런데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겼을 때 '당신의 이런 행동 때문에 내가 불안해져서 화가 났어.'라는 식으로 얘기해 주면 좋겠어. 모든 문제가 나로 기인했다고 말을 하는 거나 내가 얼마나 문제 있는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해 이전 사건들까지 들추며 얘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남편은 심플하게 알겠다고 했다.

말그릇이라는 책을 읽으니 그릇이 넓어지는구나 싶었다. OFTEN질문을 읽으니 타인의 말투를 지적하기 전에 내가 내 아이들에게 얼마나 제한적인 대답은 요구하고 그들을 막았는가 싶었다.

내가 주로 쓰는 질문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왜 그런 질문들을 하게 됐는지 나를 돌아봤다.

기존이라면

딸- 엄마 블록놀이 하고 싶어.

나- 그래? 지금 시간이 늦었는데 블록놀이를 하면 더 늦어져서 잠도 늦게 자게 되고 키도 안 크게 되지 않을까?

질문이지만 완곡하게 블록놀이를 하지 말라는 강요였고 키도 못 크게 된다는 협박이었다. OFTEN질문을 써본다면 어떨까?

딸- 엄마 블록놀이 하고 싶어.

나- 그래? 시간이 늦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딸- 십 분만 할게.

나- 그래 그럼 십분 블록놀이하고 그 후에 정리까지 마칠 수 있을까?

딸- 엄마가 도와주면 더 빨리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그래 그렇겠다. 하지만 엄마도 할 일이 있어서 도와주지는 못할 것 같아. 그러니 정리까지 스스로 하도록 하자.

( 십분 후 안 자고 계속 노는 딸)

나- 십 분이 지났네. 정리해야겠다.

딸- 나 너무 졸린데 내일 정리하고 싶어.

나- 많이 졸린 거야? 정리는 우리가 한 약속인데 엄마는 우리 딸이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어.

딸- 그래도 나 너무 졸려서 정리 못할 것 같아 내일 아침에 할게.

나- 그래 그럼 엄마는 내일 아침에 우리 딸이 정리할 때까지 기다릴게. 오늘 우리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니 내일 밤에는 블록놀이를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될 거야.

( 다음날 아침)

나- 딸 좋은 아침. 우리 어제한 약속이 뭔지 기억나?

딸- 웅 블록정리하기.

( 정리를 마치고)

나-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 치우면서 기분은 어땠어?

딸- 어제 치우고 잘걸 후회됐어.

나- 그랬구나. 그럼 어젯밤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딸- 동생들이랑 같이 놀자고 해서 같이 치우면 편할 것 같아.

위 대화는 상상이어서 실제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전 내가 하던 질문의 패턴보다는 아이의 자율성과 책임감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말그릇이 넓어지려면 내 안의 감정들에 귀 기울여 나를 다독이고 상대와의 관계에서는 여유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기다릴 수 있다는 마음과 상대에 대한 신뢰였다.

시나브로 말그릇을 넓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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