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험담은 SNS로

aka 여보 미안해

by 이음언니

사람에게 실망을 한다는 말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기대이상으로 너무 덜떨어진 모습을 보거나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거나.

단서는 기대 이상이니까 내 기대가 잘못된 것일까도 다시 고민해 본다. 다각도로 둘러본 결과 내 기대가 잘못된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실망감은 더 커진다.

우리 집에는 얼음이 나오는 냉장고가 있다. 얼음이 다소 터프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유약처리된 머그잔에 직접 받게 되면 유약들이 금이 가고 컵을 얼마 못 쓰게돼 가족들에게 컵에 직접 받지 말라고 5살 막내를 포함해 전달한 적이 있다.

지치는 하루일과를 마치고 한 시간 반의 퇴근길을 거쳐 집에 오는 길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을 처리하느라 내릴 버스정류장도 지나치고 이십 분을 더 걸어온 날.

집에 들어오니 안도감이 든다. 목이 너무 말라 샤워를 하러 가기 전 남편에게 얼음잔을 부탁했다. 얼음잔이 뭐냐고 하길래 컵에 얼음 좀 받아달라고 다시 얘기했다.

그랬더니 컵에 얼음을 직접 받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이쯤 되니 이 사람이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의구심이 든다. 그래도 대학원 나와 대기업 R&D센터에서 연구원을 한다는 사람이 그런 걸 물어보니 이게 맞는 상황인가 싶다. 그런 것까지 다 설명해줘야 하냐고 짜증 섞인 말로 대답하니 오히려 짜증 낸다고 역정이다.

하아 이쯤 되니 내가 대화하는 사람이 정말 모지리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내 기분이 이렇게 엉망인 채로 둘 수 없어서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음악을 틀고 책을 읽어본다.

그리고 그냥 인정하기로 한다. 그는 컵에 얼음 받는 방법을 모른다. 5살 막내도 아는 거지만 그는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바보인가? 결론은 안 났지만 일단 그는 컵에 얼음을 어떻게 받는 건지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고는 얼음컵사건으로 남편에 대한 대분개를 sns를 통해 사방팔방 떠들었다. 뭔가 모를 후련함이 있었는데 그 주 주말 아가씨네 부부가 우리 집에 놀러 왔고 우리는 피자&맥주를 했다.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사는 서로의 삶에 대해 노닥이는데 문득 남편이 아가씨네 부부에게 나의 못난 점을 고자질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설거지하고 수저 등을 건조통에 한꺼번에 넣어두는 스타일인데 내가 싫어해서 고쳤다. 그런데 나는 택배 받은 물건 택을 떼고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두거나 수건을 쓰고 쫙 펴놓지 않고 대충 걸어놓는다. 몇 번을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아 이젠 포기하고 산다고 했다.


나는 고상한 여편네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아~ 여보가 그랬구나~ 그런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며 어거지로 웃으며 그의 말에 수긍해 주려 노력했는데 남편은 내가 진짜 괜찮아하는 줄 알고 나의 앞담화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가씨네 가족이 떠나고 나는 이 남의 편을 어떻게 복수해야 하나 골머리를 잡고 일말의 복수심으로 그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얼굴도 안 쳐다보고 그렇게 삼일을 살았다.


남편은 영문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살았고 나는 어느 날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는 우리 부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얼음컵 얘기를 봤다며 지금은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잘 됐다 싶어 남의 편이 아가씨네 부부 앞에서 날 얼마나 망신주며 씹어댔는지 고자질을 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친구는

"오빠는 딱 두 명한테만 네 험담을 한 거네. 넌 sns에 오빠 글 올렸잖아."

나도 생각해 보니.. 그렇네. 따져보면 남편은 두 명한테 내 험담을 DM으로 보낸 거고 나는 사방팔방에 남편을 험담한 거네.

내가 남편한테 삐치는 건 남불내로였다.


그날 나는 남편에게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보 내가 고치길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나한테 말해주세요. 그렇게 타인 앞에서 얘기하니 내가 기분이 매우 안 좋았어요."

그랬더니 남편은 "아~ 그래서 삐쳐있던 거군. 알겠어 미안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왜 미안하다고 한지 아직도 이유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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