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도입 전에 반드시 계산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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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CJ대한통운이 쓰는 ‘그 로봇’을 아시나요? 물류나 자동화 설비 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로봇 자동화 설비기업 긱플러스(Geek+) 이야기입니다.
긱플러스의 로봇은 네이버배송(N배송) 거점으로 활용되는 CJ대한통운의 군포 물류센터와 쿠팡의 첨단 자동화 설비가 집약된 대구 물류센터에 실제로 도입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내 양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직·간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로봇이 업계에서 갖는 상징성은 작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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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실무자들에게 더 중요한 건 ‘어디에 쓰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 겁니다. 실제로 궁금한 건 그 다음 질문이죠. 이 로봇은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어떤 조건에서 효율이 나오고, 어디까지가 자동화의 한계인지 말입니다. 지난 27일 긱플러스가 주최한 <스마트 로지스틱스 이노베이션 2026> 행사는 바로 그 질문들을 확인하기에 적절한 자리였습니다.
이 행사는 메시지를 정리해 전달하는 PR 목적의 기자간담회가 아니었습니다. 자동화를 고민하고 있거나 이미 사용 중인 업계 실무자들을 초청해 진행된 세일즈 목적의 실무자 간담회에 가까웠죠.
그래서인지 긱플러스의 발표 내용보다 더 많은 정보가 쏟아진 건, 발표 이후 이어진 라운드 테이블에서였습니다. 긱플러스 실무자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기술 스펙이나 로드맵보다 훨씬 현실적인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제약은 무엇인지, 비용은 어디서 가장 크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투자 회수는 얼마나 걸리는지를 묻는 질문들이 이어졌죠.
이런 질문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실사용 레퍼런스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긱플러스에 따르면 한국에서 실제 셋업을 완료한 고객사는 15~20곳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한 번 로봇을 도입한 고객이 다른 센터로 확장하거나, 운영 효율 개선을 이유로 로봇 대수를 추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자동화 설비에서 ‘첫 도입’보다 중요한 신호가 바로 ‘재구매’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대목은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물류 현장에서 로봇은 더 이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긱플러스 역시 징둥, SF익스프레스 등 유통·물류 영역 고객사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BMW, 지리자동차 등 제조 현장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며 산업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현장 요구에 맞춘 커스터마이징 제품도 빠르게 늘고 있고요.
그래서 이 글은 공개된 발표 자료나 로봇의 제원 설명 대신, 현장에서 실제로 오간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자동화가 이미 가능한 영역과, 여전히 사람이 남아 있는 영역의 경계가 이 질문들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피지컬 AI가 이야기되는 지금, 물류 로봇은 과연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그리고 아직 넘지 못한 벽은 무엇일까요? 이제부터는 그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현장 질문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가장 많이 오간 질문은 의외로 로봇의 성능이나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실무자들이 반복해서 파고든 지점은 로봇이 가능한 것보다는, 로봇이 여전히 하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해 현장에서 마주치는 ‘제약조건’에 대한 질문에 가까웠죠.
대표적인 질문이 바로 유통기한이 있거나 일정 시간 안에 반드시 처리돼야 하는 ‘시한성 품목’ 관리였습니다. 한 참가자는 이런 품목을 로봇이 어떻게 구분하고, 어떤 기준으로 처리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긱플러스 측은 먼저 들어온 재고가 먼저 나가는 선입선출(FIFO) 프로세스 자체는 시스템 단위에서 기본적으로 구현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긱플러스가 선입선출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 강조한 것은 현장의 제약조건을 반영한 사전 설계였습니다. 유통기한이 짧거나 회전율이 높은 품목을 동일한 랙에 섞어 두기보다는, 애초에 별도 구역으로 분리해 관리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설명이었죠. 출고장과 가까운 위치에 시한성 품목 재고를 배치하거나, 고층 랙이라면 저층부에 우선 배치해 불필요한 상하 리프팅과 이동을 줄이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다음 논의는 자연스럽게 비용으로 넘어갔습니다. 로봇을 도입할 때 필요한 비용은 로봇 구매 가격에 그치지 않습니다. 랙 설치, 바닥 평탄화 공사, 통신 인프라 구축 등 기반 환경을 마련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함께 따라붙죠. 긱플러스에 따르면 최근 프로젝트에서는 오히려 로봇보다 이런 기반 인프라 구축 비용이 더 크게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컨대 랙 높이가 10미터를 넘어가면 바닥 평탄도 요구 조건이 급격히 높아지고, 구조 보강과 안전 설계 비용도 함께 증가합니다. 여기에 지진이 잦은 환경이라면 방진 설계까지 추가되는데, 실제로 일본의 물류센터 공사 비용이 한국보다 높은 이유를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랙을 더 높게 쌓는 대신, AGV나 AMR 대수를 늘려 수평 이동으로 처리량을 확보하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옵니다.
결국 이 모든 논의는 ROI(Return on Investment)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자동화의 목적은 로봇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있기보다, ‘비용 대비 처리량’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입니다. 긱플러스가 여러 차례 강조한 것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무조건 고사양 설비를 한 번에 도입하기보다, 현재 물량과 출고 패턴에 맞는 ‘가성비 있는 자동화’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초기 도입 단계에서는 무료 또는 유료 POC(개념 증명), 시뮬레이션을 통해 로봇 대수와 레이아웃, 처리량을 먼저 계산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권장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번에 완성형 자동화를 구축하기보다, ROI가 검증되는 구간부터 쌓아 올리는 접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어진 질문은 AS가 얼마나 원활하게 가능한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동화 설비는 한 번 멈추는 순간 곧바로 생산성과 출고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실무자들에게 AS는 초기 도입 비용만큼이나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합니다. 특히 긱플러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국내 기업 대비 AS 응대에 한계가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죠.
이에 대해 긱플러스 측은 모든 장애에 대해 즉각적인 현장 파견을 전제로 한 대응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대신 이들이 제시한 해법은 현장 자가 대응 역량 확충과 원격 지원을 결합한 운영 구조였습니다. 초기 셋업 이후 일정 기간 동안 현장 운영팀을 대상으로 집중 교육을 진행하고, 이후에는 경미한 장애나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슈의 경우 현장 인력이 직접 조치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둔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현장 대응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도 존재합니다. 이 경우 긱플러스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글로벌 대응 체계를 통해 문제를 분류합니다. 본사와 해외 거점에서는 24시간 원격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며, 원격으로 해결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의 협력 파트너나 엔지니어를 현장에 파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멕시코의 한 자동차 제조 현장에서 발생한 장애 사례에서는, 인근 국가에서 엔지니어를 파견해 12시간 이내에 복구를 완료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대목에서 드러난 건, AS 역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설계와 비용 구조의 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모든 장애를 실시간으로 파견 인력이 처리하는 구조는 운영 안정성은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비용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현장 대응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원격 지원과 지역 협력사를 결합한 구조를 만들면 안정성과 비용 효율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요컨대 현장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 로봇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이 로봇을 쓰는 구조가 정말 돈이 되는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기술 스펙보다, 도입 이후까지 포함한 운영 구조와 설계에서 갈렸습니다.
현장 질문이 가장 길어졌던 대목은, 오히려 자동화가 ‘안 되는 영역’이었습니다. 비용과 구조를 모두 계산하고 난 뒤에도, 끝내 로봇이 멈춰 서는 지점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이었죠. 왜 어떤 공정에는 여전히 사람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긱플러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동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공정은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라, ‘환경 변화’와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긱플러스가 꼽은 대표적인 자동화 미개척 영역이 바로 상·하차 공정입니다. 트럭 내부로 컨베이어를 밀어 넣어 박스를 자동으로 꺼내는 실험은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상품 파손률과 사람 대비 떨어지는 속도 문제로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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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는 환경입니다. 무인지게차의 경우 실외 온도 변화와 충전 안정성이 새로운 리스크로 등장합니다. 특히 혹한 환경에서는 배터리 방전으로 인한 안정성 저하가 곧바로 운영 리스크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이를 보완하려면 별도의 온도 통제가 가능한 공간이나 충전 환경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는 다시 추가 인프라 투자라는 비용 부담으로 연결됩니다.
패킹 공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품 규격이 일정하고 반복적인 작업이라면 자동화 여지가 있지만, 주문 구성과 포장 방식이 수시로 바뀌는 환경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로봇보다 훨씬 유연하게 대응합니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자동화가 가능하냐가 아니라,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비용이 과연 합리적인가로 귀결됩니다.
긱플러스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로봇팔 피킹 스테이션 역시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흡입기를 활용해 상품을 집어 올리는 이 설비는 이커머스 물류 현장 활용을 목표로 개발됐지만, 확인된 한계도 분명했습니다. 현재 로봇팔이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화물 무게는 약 5kg 수준으로 제한돼 있었고, 포장 형태나 색상이 유사한 신규 SKU(Stock Keeping Units)가 늘어날수록 비전 인식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추가 학습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결국 정확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로봇이 피킹·패킹한 상품을 사람이 다시 검수하는 구조가 마련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물성을 다루기 위해서는 로봇팔에 부착하는 모듈 역시 더욱 다양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 또한 운영 복잡도와 비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완전 무인 자동화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효율이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멈춰 서는 셈입니다.
이 모든 논의를 종합하면 자동화의 경계는 기술 그 자체보다, 현장 운영 상황에 맞춘 판단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 그 경계를 명확히 긋는 일이 로봇 도입의 출발점이자, 가장 어려운 의사결정입니다.
쿠팡과 CJ대한통운이 사용하는 ‘그 로봇’은 이미 현장에서 검증된 도구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간담회가 보여준 더 중요한 메시지는 따로 있었습니다. 로봇을 도입할지 말지를 묻는 단계는 지났고, 이제는 어디까지 도입할지를 판단하는 단계로 시장이 넘어왔다는 점입니다. 어떤 현장에서는 랙을 더 쌓기보다 로봇 대수를 늘리는 것이 낫고, 또 어떤 현장에서는 아예 자동화를 하지 않는 판단이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 판단의 기준점을 만드는 것이 사람인 만큼, 아직 우리 실무자들이 할 일은 많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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