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어쩌다 '주얼리' 사업을 돕게 되었냐고.
상투적인 에피소드를 늘어놓다가 문득, 정말
왜 내가 주얼리를 하게 되었냐는 고민을 해본다.
생각해보면, 시작은 옷이었다.
어려서부터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유난히도 옷에 집착했다. ‘서양의 복식'이라는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책을 몇 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탐독했던 꼬마 아이가 나였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인터넷 쇼핑에, 제작 주문에, 해외직구에 택배 아저씨와 돈독한 친분을 다지던 나는 한번 입고 쌓여만 가는 옷더미가 드레스룸을 가득 채우자 그제야 현자 타임을 느끼고 옷 쇼핑을 절제했다.
다음은 신발이었다.
신발장을 열어본 친구가 어떻게 누드톤 킬힐을 열 켤레나 갖고 있냐고 물었지만, 내 눈에는 채도도 굽 높이도 파임 정도도 천차만별의 개성 넘치는 구두들이었다. 하지만 아끼고 아끼던 라스베가스 출신 12cm 명품 힐의 앞코가 터져 복구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 후에야, 마놀로 블라닉도 지미추도 평생의 동반자는 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슈즈앓이도 사그라들었다.
그다음은 가방이었다.
평범한 티에 오래된 청바지를 입더라도 화려한 클러치를 드는 것과 링클 있는 모터백을 드는 것이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놀라운 사실에 매료되었다. 한창 가방에 집착하던 5년 전 사뒀던 트렌디한 가방들은 철이 지나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었고, 값비싼 샤넬이나 디올 가방은 특별한 날을 위해 더스트백에 고이 보관해뒀다.
그리고 결국, 내 종착지는 주얼리였다.
예쁜 옷이 주는 즐거움은 하루 정도.
예쁜 신발이 주는 즐거움은 한 달 정도.
예쁜 가방이 주는 즐거움은 일 년 정도,
아무리 길어봤자 십 년이다.
하지만, 예쁜 주얼리가 주는 즐거움은 평생이다.
잃어버리거나 도둑맞는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는 한,
예쁜 주얼리는 평생의 값어치를 한다.
마릴린 먼로가 노래하듯,
젊음은 유한하지만 보석의 색은 바래지 않는다고,
패션은 변해도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고.
그래서, 주얼리를 선물하는 것은 더 의미가 있다.
평생을 그와 함께 할 징표를 선물하는 것이기에.
아니, 평생을 넘어 아름다운 주얼리는
세대를 넘나드는 맹세를 약속한다.
어쩌면 내가 주얼리에 빠지게 된 것은
아주 로맨틱한 이유가 아니라,
아름다움으로부터 얻는 효용을
가장 오래 누리겠다는 합리적인 선택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코너스톤은 누군가의 소중한 날, 그 날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수만 시간을 노력한 사람들의 노고가 합리적으로 소비될 수 있도록 돕는 주얼리 플랫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