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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nnie Oct 24. 2015

10화. Pancake

쉽고 간편한 나를 위한 음식, 팬케이크

나는 와이프보다 요리를 잘 한다. 그리고 좋아한다. 영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만난 우리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와이프의 손에 물 한방을 안 묻히게 할 정도로 갖은 정성(?) 다 바쳐 요리를 했다. 물론 연예 초기에나 그랬지 두 달 정도 지나면서 설거지는 시켰다. 이 생활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내가 영국에 살면서 했던 요리들을 손꼽아 보면 김치, 육개장, 콩나물국밥, 보쌈과 같은 한국 요리뿐만 아니라 파스타와 같은 외국 요리들도 틈틈이 해서 먹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외식을 자주 할 수도 없었기에 주로 집에서 가정 요리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는 했어도 돌이켜 보면 즐거웠던 기억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대 시절이다. 사고(?)를 친 덕분에 약 2주 동안 취사장에 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취사장 선임들은 결코 나에게 칼을 쥐어주지 않았다. 취사병도 아닌 내가 할 일이라고는 그저 청소와 정리였다.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돌이켜 보면 무의미하게 보낸 것 같지는 않다. 취사병들 어깨 너머로 요리하는 모습, 그리고 과정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제대한 후에도 요리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할 필요도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산 덕분에 내가 집에서 요리할 일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결국 유학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나를 요리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언제부터 요리를 했을까?

나의 첫 요리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정확히 기억이 난다. 내 나이 딱 10살 때였다. 큰 건물의 지하실에 살던  그때, 어머니께서는 종종 팬케이크를 구워주셨다. 잼에 발라먹던 팬케이크는 아니어서 설탕이 무척 많이 들어갔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외출하셨던 어느 날, 나는 나 스스로 팬케이크를 만들었다. 집에 있던 밀가루, 우유, 계란, 버터, 설탕, 소금만으로 내가 생각해도 꽤 괜찮은 팬케이크를 만든 것이다. 이후에도 몇 번 더 만들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영국에 오면서 팬케이크 데이(Pancake Day)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접한 팬케이크 데이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 유래를 듣고 보니 영국인의 전통이라고 할 만은 했다. 옛 유럽에서는 부활절 전까지의 약 6주 동안은 금식과 같이 절제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 시기를 사순절 기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밀가루, 버터, 계란 등을 모두 소비해야 했는데, 이들 재료로 손쉽게 만든 음식이 바로 팬 케이크라고 한다. 사순절의 경건하고 절제하는 모습은  온 데 간데 없어 보이는 영국이지만, 그래도 음식만은 굳건히 전통으로 남은 모양이다. 


BBC의 홈페이지에 이날 먹을 팬케이크 만드는 요리법까지 소개될 정도이니까.  BBC 레서피를 참조해 영국의 팬케이크 먹는 날,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홈메이드 팬케이크


팬케이크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토핑, 잼의 종류들을 선택해서 먹으면 된다. 영국인들은 아이싱 슈가를 엄청 뿌려먹는 것이 특징이다. 칼로리 폭탄이 걱정이라면, 레몬, 아이싱 슈가만 뿌린 깔끔한 스타일의 팬케이크 추천!



악마의 잼이라는 뉴텔라를 펴바른다. 
딸기잼만 발라 돌돌 말아 먹는다.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을 앞둔 시장에는 각종 제수용품과 음식들로 넘쳐난다. 비록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팬케이크 데이를 앞둔 영국의 마트에도 관련 상품들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 놓는다. 


알록달록한 팬케이트 주방 도구들



마트마다 팬케이크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이 넘쳐난다.

귀차니즘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팬케이크 


심지어 영국에는 팬케이크를 만드는 도구까지 있을 정도로 영국인들의 팬케이크 사랑이 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영국에 와서 접한 팬케이크는 내가 기존에 알던 팬케이크보다 훨씬 다양하고 발전(?) 한 형태이다. 잼뿐만 아니라 여러 과일 및 아이싱 슈가를 뿌려먹는 팬케이크는 훌륭한 디저트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메인 요리의 단 맛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디저트는 달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한 내가 되었다. 



                        FRESH FRUITS PANCAKE WITH ICE CREAM  @ My Old Dutch                         


한국에 오면서 나는 종종 팬케이크를 해 먹게 되었다. 어른들 모시고 살다 보니 귀국 후 요리할 기회는 많지 않다. 가끔 파스타 정도 만들어 먹는 수준이다. 그런데 팬케이크는 종종 만든다. 내가 만든 팬케이크는 영국에서 먹던 것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과일도 아이싱도 없는 그저 평범한 팬케이크다. 밀가루, 버터, 소금, 설탕, 계란만으로 만든 팬케이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과거 사순절을 앞둔 영국인들이 먹던 팬케이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도 팬케이크를 먹는 사람은 이 집에서 거의 나 혼자다. 와이프도 더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더 이상 팬케이크를 즐겨 먹지는 않는다. 


와이프의 작품으로 우리 식으로 응용해 본 호떡 케이크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우리 집에서 인기도 없는 팬케이크를 만들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머리 속에 떠오르지는 않는다. 아니다 하나 찾았다. 팬케이크가 내 인생 첫 요리여서도 아니다. 그리고 단 음식이 먹고 싶어서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만을 위한 음식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건 말건  상관없다. 만들기 쉽지만 라면 보다는 약간 노력이 더 필요한 요리며 나를 위한 음식, 그것이 팬케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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