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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on Lee Aug 16. 2022

일본에 대한 한국 정상의 명언

확실한 자존감과 반드시 되새겨야 하는 광복의 의미

말로 형언하기 어려웠던 그 날의 감격

광복(光復). 


올 것 같지 않았던 것을 마주했을 때 느낌, 한 인생의 성공보다 더 이뤄지기 어려운, 많은 염원이 만들어져 이루어 진 것. 비록 자력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 많은 투사들의 노력과 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훌륭한 '과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히려 자세하게 모르는 것에 송구해야 한다.


이 일본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현재 정권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위엄과 외교 모두 몰락할 지경에 이르러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일본은 협력해야 하는 대상이긴 하나 이는 일본이 선결을 해야 하는 조건이 있을 때다. 일본은 아직도 현 정부의 대한민국을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잘 못한 일본을 뒤로 하고 현재의 한국 정부가 일본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아주 이상한 형국을 보고 있다. 놀랍게도 이는 'No Japan'을 외치던 이들이 현재 대통령을 선택한 결과임을 모르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명언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가지가 떠오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는 당시 단상에서 호탕하게 외쳤던 그 말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G20 정상회담에서 자유무역 유지를 거듭 외쳐놓고 그 다음날에 한국에 수출 규제를 내걸었을 당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 장관 회의를 요청하면서 내놓았던 말이다.



일본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


조선총독부의 건립 여부를 떠나 당시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에 저질렀던 만행은 마르고 닳도록 말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민족의 정기를 끊는다는 이유로 말뚝을 온 산하에 박하놓은 것은 물론 무궁화의 씨앗을 모두 없앤 것은 물론 국어 사용 금지는 애교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입에 담기 부끄러운 짓들을 저질러 놓고 사과는 고사하고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일 자민당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부아가 치민다. 더 처참한 것은 한국인임에도 일측에 아주 긍정적인 것을 넘어 지금의 한국이 잘못해서 일본과 관계가 틀어졌다고 이야기 하는. 현재의 대통령, 안보실장, 안보실 1차장, 그리고 문화부장관까지. 이름까지 알고 있으나 지나치게 파렴치해서 거론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잘 못 했다니. 이들은 한국 여권을 갖고 있을 자격이 없다. 아, 기득권이라서, 아니면 일본의 2등 시민으로 살고 싶은 건가?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총독부 건물을 터트리는 자리에서 위와 같은 가슴이 뻥 뚫리는 말을 남겼다. 이후 일측 외교부의 강한 항의가 잇따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주재 한국대사와 한국 외교부가 곤혹을 치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말이었다고 거듭 생각한다. 총독부 건물은 광화문을 시작으로 하는 경복궁을 막고 있었고, 상공에서 봤을 때, 서울 한 복판에 한자로 일본이라는 글자를 보이기 위함이었음을 모르지 않으니, 터트리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에도 이를 두고 찬반이 뚜렷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치욕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다시는 이와 같은 국치를 당하지 않아야 함을 모르지 않으나, 나를 괴롭히고 희롱하고 때리고 학대하던 이들의 책임자가 살던 곳을 버젓이 내 강토에 두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폭파를 반대하는 이가 있었다는 측면에서 거듭 유감이었다. 하물며, 문민 정부는 일측의 건물의 순차적인 철거 요청까지 확실하게 거절했다. 이게 보수다. 일본이 바라는 데로 하는 게 보수가 아니라.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문재인 전 대통령

그의 의지를 당시 비장한 표정과 결연한 말투에서 확연하게 엿볼 수 있었다. 일측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가 야기된 이후 문재인 정부는 아주 발 빠르게 움직였다. 대통령은 긴급 장관 회의를 요청했으며, 곧바로 대응 마련과 대책 강구에 나섰다. 해당 물자를 향후 확보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만들기 위해 민관이 최대한 협력했으며, 이를 어느 정도 만들어냈다. 성과가 없지 않았으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가까운 일본에서 수입하면 가장 좋지만, 다른 나라(이른 바 유럽)에서 수입한다면 물류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에 이를 벌충하기 위해 국내 생산을 위해, 반대로 그간 서두르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던 만큼, 이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가장 보수적인 인물이 대통령이었던 만큼, 문 대통령의 발언 강도는 아주 강경했으며, 그가 이토록 강한 단어를 선택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 그만큼, 일측의 행동이 졸렬한 것도 모자라 상당히 치졸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019년에 한국은 구매력지수에서 일본을 넘어섰으며 202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1인당 GDP에서 일본에 상당히 따라붙은 상황이다. 여전히 일본의 경제력에 비해 한국이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 편에 속하지만, 일본을 상대로 이토록 실질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자존심을 지키고 더 나아가 일본에 강력하게 경고한 것은 헌정 이후 처음이다. 그럼에도 당시 기득권은 우리가 일본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며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의심스러운 반응을 내보인 집단도 있다. 현재 이들이 국정을 이끌고 있으니, 한일관계 정상화와 한미일 군사분야 협력, 더 나아가 일본에 종속을 실질적으로 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놀랄 일이 아니다. 스스로에게는 아주 당연하게 예상이 됐다. "No Japan"을 부르짖어놓고 "부동산" 실패(라는 것은 이유고 그냥 싫은 이유)를 내걸며 국가의 혼을 파는 집단을 차기 지도자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문 대통령이 보였던 결기를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우를 절대로 범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각자가 사는 대인 관계에서는 그토록 '자존감'을 부르짖으면서 국제관계에서 '자존감'을 부르짖으면 마치 색깔론을 펴는 소인배들을 아주 많이 봐왔다. 내가, 내가 있는 집이,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내가 다니는 일터가, 내가 자주 들리는 장소가 좋듯이 내가 살고 있는 강토와 터전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남들이 내 가족에 험담을 하면 내가 나서서 막듯이, 나의 조상을 괴롭혔던 누군가가가 꾸준히 이와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나에게 아주 큰 이익이 되면 과하지욕과 도광양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낮은 자세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당당함'이 필요할 때였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당당해야 남이 함부러 대하지 않을 수 있듯, 내가 살고 있는 강토가 안전하고 남이 감히 건드릴 수 없을 때, 내가 보다 오롯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 문 대통령이 내걸었던 당시 말이 거듭 뇌리에 남아 떠나지 않는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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