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유망하다는 직종

노력만으로 치환할 수 없는 시류에 의해 발현되는 대운의 결과

by Jason Lee
xii.-Success-Word-Art-1.png 전도유망보다 중요한 스스로의 위치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대를 거치면서 상류사회 직업군이라 여겨지는 의료계와 법조계로 대변될 수 있으나, 이마저도 지금까지 유망하다고 직종이지, 이후에도 지금처럼 타인의 존경과 사회의 존중을 두루 받을 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궁극적으로, 현재와 같은 시류가 지속될 확률이 가히 높기 때문에 여전히 강력한 직종 내 패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와 같을 것이라 예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도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직종을 제외하고다. (늘 두 개 밖에 없던) 고교 시절 각 계열에서 상위에 자리한 누군가만 쟁취할 가능성이 높은 해당 직군을 제외하면 이른바 전도하며 유망한지 논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시류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그 직군에 들어가 있는 누군가가 당시의 열의와 흥미를 갖고 해당 직업에서 꾸준히 자리하길 바라는 것은 사회생활을 해본 이라면 더 어렵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물며 그 직종이 평생 직장일 가능성은 사회의 다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사람으로 인해 야기된 스트레스는 어느 사회보다 더 높을 것이라 유추한다면, 전도유망함 앞에 놓이는 스트레스가 더 커질 때, 그 업이 내게 주는 장래성은 이내 작아보기이 쉽상이다. 즉, 이른 바 사회적으로 명명된 '(아주 쓸 때 없는) 전도유망' 앞에 내가 얼마나 작아지는 지는 지낼 수록 더 쉽게 알게 된다.


또 있다. 각 직군에서 경쟁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 업무 기피와 인간성 결여와 사회성 부재로 야기된 이가 뿜어내는 스트레스가 다가 아니기 때문. 이곳에서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승진은 다른 문안이다. 승진 실패가 곧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야기하는 것일 테니, 결국, 이 앞에서도 전도유망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무의미해지는 지 알 수 있다. 즉, 시류가 맞으며,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생존으로 야기되는 승진까지 모두 지나야 전도유망함이 내 앞에 오게 된다.


정리하면, 그 사회가 규정하는 전도유망하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무용할 여지가 많다는 데 있다. 이를 테면 현재 의과대학 진학률이 곧 그 수험생이 추후 의사가 된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년 뒤 어떤 세상이 도래할 지 아무도 모를 뿐이다. 그 때 당시 해당 자녀를 의대로 밀어넣은 부모가 득의양양할 수는 있으나, 그 영혼의 미래를 냉정하게 내다볼 수는 없다. 그 옛날 공학도를 양산하고자 했던 사회 풍류도 지금 어느 덧 사라지고, 의대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았던가?


폭 넓게 보면, 남들이 다 간다고 나도 무작정 따라 진입하는 거는 위험하다. 나의 흥미와 추후 적성을 고려한, 이른 바 독립적인 결정이 추후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 자체는 그저 알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여러 분야에서 시장에서 책정한 가격을 받아야 한다. 그 시장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 옛날 신문을 발간할 때, 활자를 다루던 이가 사라졌고, 이제 웬만한 직종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개연이 생겼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으로 훗날의 장래를 본다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지 알 수 있다. 잠깐 반짝하고 사라질 직종인지, 장기간 군림할 수 있는 직업인지는 지나봐야 알 수 있다.


즉, 유망하다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재미나게 할 수 있는 일이 시류를 기가 막히게 잘 만나 일치할 때 와야 빛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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