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문화적 요소로 야기된 정치사회적 습성
흔히들 일본을 말할 때,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데 생각하는 바가 지나칠 정도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특성은 물론 같은 집에 사는 가족들과도 각기 다른 개인인 점을 보면, 결국 가깝다고 무조건 비슷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며, 멀리 있다고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니 가깝다고 우리랑 비슷하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에 대한 이해 부족과 내가 타인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의 결여가 아주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의 영향력으로 글자를 깨치고 문명화의 길로 접어든 것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자기화를 잘 해낸 결과이기도 하다. 도서 국가라는 특수성과 이로 인해 야기된 사회문화적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서구의 영향으로 강행된 근대화로 말미암아 서양의 특성을 흡수한 것이 혼재되어 있어서다(스스로도 잘 모르지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우선, 일본을 이야기할 때 언급할 수 있는 섬나라라는 점이다. 여느 국가들이 모두 대륙으로부터 이어져 있는 것과 달리 일본은 가깝지만 동떨어져 있다. 근대 이전까지 세계사적으로 항해술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탓에 이동에는 당연히 제약이 따르며, 교류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하물며 동아시아 문명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중국 대륙을 오간다는 것은 일본에게 당연히 큰 부담이었으며, 그나마 가까운 한국을 통해 전해지는 물자와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국토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당연히 외부 요소에 대한 침입이 자행될 일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침략으로 이어진 것은 고려시대가 전부다. 쓰시마섬을 간혹 침략한 것이 있지만, 대대적인 공격이라 보기 어려우며 이후 영유권을 적극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소유보다는 안정을 위한 조처였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니 일본은 늘 대내적인 투쟁에 시달렸다. 사무라이 문화가 단적인 예다. 칼을 차는 이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차이가 컸으며, 당연히 사무라이는 명예를 중요시했으며 금전과 거리가 멀었다. 당연히 상업이 발달하고 많은 물자가 오가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 고대부터 근대화 이전까지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를 조선시대까지 약탈한 것을 보면 이내 유추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통합된 정치조직체가 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본에 전국시대가 오랫동안 전개된 것도 같은 이유라고 짐작한다. 많은 다이묘(大名)들이 각기 다른 지역에 태동하면서 상징적인 존재인 일왕을 두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즉, 특정 강한 다이묘가 일왕을 친다면, 다른 다이묘들로부터 숱한 견제를 당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명줄을 줄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에 일왕을 치기보다는 일왕을 모시면서 정통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 온 것이다.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마찬가지다. 히데요시는 영지전봉(領地轉封)을 통해 다이묘들의 힘을 축소했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기에 조선 침략으로 연결하기도 했다.
사회문화적인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칼찬 이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나머지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려야 했으며, 그들과의 부딪힘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일본은 사과하는 문화, 그 이전에 실례를 범하는 것을 상당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작은 소리를 통해 먼저 알리고, 이후 상황이 벌어지면,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입에 달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사회가 경직되어 있었단 이야기이며, 외부 침략이 없다 보니 역으로 내부 긴장이 높은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근대화가 자행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의복과 사상은 서구의 것을 차용했지만, 궁극적으로 일본이 유지해 온 일본성(Japan-ness)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서구식 교육제도가 들어오면서 상대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워졌고, 이는 곧 일본의 인식적 불균형이 꾸준히 자리잡힌 균형으로 남아 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인의 인식에서 기존 사회의 틀로 진입한 이와 그러지 못한 이를 암묵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일본에 오타쿠와 히키코모리가 꾸준히 존재하고 있는 점을 보면, 나와 다른 이를 철저히 구분짓는 것이며 이는 곧 우열을 가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을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묻는 것에 친절하게 답해주나 모르는 경우나 실수를 했을 경우, 칠칠치 못한 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을 거듭 느꼈다고 말해준 이들도 있을 정도로, 일본사회에서 그들이 정해놓은 준거의 틀에 진입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에 대한 차이는 실로 큰 것으로 이해된다.
직열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장인정신이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동양문화권에서 도드라지는 부분 중 하나이나 그 중에서도 일본 사회에서는 장인에 대해 더 각별하게 대하기도 한다. 일예로 가락국수집을 보면 몇 십년이 아닌 1~200년 전통인 집도 많으며, 그 외 공예나 기타 식당 등 가문 대대로 업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정치, 기업, 식당 등 그들이 대하는 직군은 가급적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현대 들어서는 덜 하지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사회에서는 집안마다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정치가 집안에서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는 부분도 엇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반면, 강제적인 첫 충격이 바로 서양의 침입으로 인한 근대화였다. 그 결과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한 전면적인 근대화였다. 일본은 간헐적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제한적인 교역에 나섰으나, 미국에서 메튜 페리 제독의 침입으로 일본은 서구화에 눈을 떠야 했고, 이는 대대적인 개혁으로 진행됐다. 아니라고 여긴 것을 과감하게 무너트린 것을 보면, 일본사회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칼을 찬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세 야기된 지도층의 인식이 관철되면, 곧 나머지 모든 이들이 따라야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확실한 근대화를 통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르짖으며 서양화를 도모한 것이다. 목표를 보면 놓치지 않겠다는 무서운 집념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사회 내에 전체주의성이 묵시적으로 내재되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일본이 그간 잉태해 온 사회적 특질을 고려하면 더더욱 어렵지 않게 바라볼 수 있다. 그랬기에 일왕의 지도 아래 역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중국이 그간 1~2천 년간 자행한 이상의 수준이었다고 하더라도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그만큼, 일본이라는 국가는 근대화 이후 하나의 사람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이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비록 과한 욕심과 엄청난 판단 착오(하와이 침공)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야 했지만, 이후 엄청난 천운(한국전쟁)을 맞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반대로 보면 이 모든 것도 섬나라였기에 일본이 마주해야 하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추론할 수 있다.
결국,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재단되어 온 그들이 꾸린 암묵적인 공동체에 진입해 있느냐의 유무가 상당히 중요하다. 반대로,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 시선을 거듭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 역내 환경에 대입해 보면, 일본이 왜 한국, 중국, 러시아를 무시하는지 알 수 있으며, 미국을 필요 이상으로 떠받드는지 알 수 있다. 근대화 이후 일본은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한국은 완연한 식민지로, 중국은 일부를 식민지로 뒀다. 이에 일본은 이들보다는 자신들을 제대로 짓밟은 바 있는 미국(페리 개항, 원자폭탄 투하)에게는 '큰 형님' 대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일본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나라 모두 사정이 어려웠던 것을 보면, 미국과의 확실한 동맹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일본이 왜 이와 같은 습성을 보이고 있는 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단순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해서가 아니다. 좀 더 멀리, 다양하게 바라보면 일본이 왜 그와 같은 행보를 걸었는지를 바라볼 수 있다. 일본에 대해서 아직 우리는 잘 모른다고 봐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수준의 시민의식을 자랑하고 있다. 배울 점도 많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공질서 유지와 같은 물건이라도 아껴쓰고자 하는 그들의 문화적 행태는 많은 귀감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결여되어 있는 정치의식을 보면, 그간 일본이 보여온 역사문화적인 행태를 통해 신장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근대화 이후 일왕 중심의 반근대적인 체제로 국가를 운영한 것만 보더라도 어렵지 않게 깨칠 수 있다.
현재의 여당인 자유민주당이 메이지유신 이후 단 3년을 제외하고 집권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선택적 민주주의의 반로로 서구가 제시한 민주정을 실현하면서도 그들이 유지해온 관성으로 자민당이 꾸준히 일당을 자리하는, 일당체제의 형태를 띄고 있다. 한국의 주변에는 모두 일당체제로 운영되는 국가들만 자리하고 있다. 역으로 보면, 이들의 외교 노선은 지도자가 바뀐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일당체제가 주는 효율을 그대로 발휘하는 셈이다. 일본은 당연히 민주주의 국가지만, 사실상 일당체제로 봐야 한다. 반면, 시민사회의 정치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지리로 잉태된 문화적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봐도 무방하며, 그간 외부 침입에서 자유로웠으나 첫 침략인 서양의 개입으로 인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내재성과 외부효과를 통해 사회적 예의를 지나칠 정도로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리하면, 왜 일본이 왜 과문명화된 사회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