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를 둘러싼 이해관계

제해권을 둘러싼 미국, 러시아, 터키의 의도

by Jason Lee
캡처.PNG 지중해 진입의 전초

흑해에 대한 긴장이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가 2014년에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본격적인 위협이 감지되고 있다. 크림전쟁이 발발한 이후, 처음이다. 이후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미소 대결이 본격화되긴 했지만, 한반도에서처럼 전쟁이 일어나지도 았았으며, 냉전 상태가 지속됐다. 이후 소련이 붕괴된 이후 흑해에서 더 이상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이유는 없었다. 그러다 2014년 이후 흑해가 다시금 국제정치에서 조망받는 해양으로 떠올랐다.


지정학적 위협요소 점증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 우크라이나는 졸지에 흑해를 끼고 있는 가장 큰 반도를 잃었으며, 아조프해(Azov Sea)에 대한 영향력도 사실상 상실했다. 우크라이나 영토가 아조프해와 맞닿아 있긴 하나 아조프해에서 조업 활동이나 배를 출항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크림반도를 잃으면서 아조프에 대한 영유권이 사실상 러시아로 넘어간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다. 즉,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 이후, 아조프해를 사실상 내해로 두면서 흑해에 대한 영향력을 보다 넓혔으며, 이를 통해 지중해로 진입할 보다 확실한 전초기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과 터키가 이를 용인할 리 없다. 미국은 터키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으며, 터키 또한 이를 활용해 이익 확보를 노리고 있다. 미러의 대립 사이에서 좀 더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고자 함이다. 동북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터키의 에제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강성을 띄고 있어 위험부담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러나 정작 지난해 영국에서 열린 NATO 70주년 정상회담에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것 같은, 주도적인 목소리를 냈으며, 굳이 서방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이는 터키가 난민 이동의 중간지대로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가 이렇다 할, 정확하게는 약속을 맺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EU에 속한 국가들 대부분이 NATO 회원국인 점을 고려하면 터키의 불만 수위가 충분히 이해될 만하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나친 이권개입을 원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원리주의로의 회귀를 도모하고 있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정치판에서 종속변수가 되지 않으며, 서방이 아닌 서아시아(중동)에 들어갈 뜻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서아시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립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터키가 빅플레이어로서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미국과 대립된 의견을 보이는 것이다.


즉, 현재 흑해를 둘러싼 정세를 보면 러시아의 야욕, 터키의 이권, 미국의 의도가 모두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터키는 크게 부딪혔다고 보긴 어렵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불만을 여러 차례 드러낸데다 지난 NATO 회담에서의 발언을 보면 결코 미국과 터키가 이전과 같은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삼해구상(Three Seas Initiative)를 통해 동유럽 개발에 박차를 가해 러시아를 압박할 뜻을 일찌감치 피력했다. 그 옛날 유럽재건계획(통칭 마셜플랜)이 통했던 것처럼 얼마나 유효할지는 의문이지만, 미국이 러시아를 집중 견제하고자 한다면, 터키를 동반자로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터키가 이전과 같지 않은 것만으로도 러시아는 틈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는 크림 병합과 미국과 터키의 관계 경색이라는 복수의 이점을 통해 지중해 진출을 본격적으로 노리고 있다. 물론 흑해를 지나 지중해로 진입하려면 터키의 마르마라해를 지나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와 터키가 좀 더 긴밀해진다면, 러시아 선박의 이동이 좀 더 용이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에게해(Agean Sea)를 지나 지중해까지 넘나들 수 있다. 물론 러시아가 넘어야 하는 관문은 많지만, 이미 아조프해를 손아귀에 넣고 흑해연안을 상당 부분 확보한 것만으로도 러시아에게 상당한 이익이다.


러시아는 이미 2008년에 조지아를 침공한 전례가 있어 흑해 인근에서 군대 이동을 포함하는 군사 이동에 나설 경우 흑해에 대한 긴장과 위협은 보다 점증할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미국은 루마니아에도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루마니아는 예전부터 제정 러시아와 소련, 현재의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미군이 주둔하면서 러시아로부터 영향력을 받아낼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위협요소를 일정부분 희석했다. 즉, 미군은 터키에 공군기지, 루마니아에 해군기지를 두고 있으며, 이미 흑해를 두고 러시아와 터키가 마주하고 있다.


유류 수출입의 교두보

흑해는에는 많은 국가들의 이권이 연결되어 있다. 주로 거론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터키 외에도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흑해와 마주해 있다. 비록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여느 국가들에 비해 존재감이 돋보이진 않고 있지만, 흑해를 지나는 가스관이 많은 만큼,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게도 흑해는 당연히 중요하다. 러시아로부투 천연가스를 직접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도 궁극적으로 해양을 통한 천연자원 수출입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할 지리적 접근성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스관이 터키와도 연결되어 있어 천연가스가 매개가 되어 러시아와 터키가 나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터키도 러시아에 적대적으로 나설 수 없다. 즉, 러시아는 천연가스의 제왕답게 막대한 천연자원을 통해 흑해를 둘러싼 지역에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유럽도 러시아가 제공하는 천연가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정리하면 흑해를 인접한 국가들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천연가스 공급을 원활히 할려면 러시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러시아도 자신들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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